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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 저자 : 김개미
  • 출 판 사 : 문학동네
  • 출판년도 : 2024년
  • 청구기호 : 초 811.8-문92ㅁ-92
  • ISBN : 9788954692175

책내용

유머와 농담을 잃지 않으며
매일매일 새롭게 탄생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수프같이 부드럽고 따뜻할 뿐

오 분 정도 기다리면
여기서 팔이 하나
저기서 다리가 하나 생긴다

손가락이 돋고
발톱이 나오고 나면
마지막에 정신이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그날은 종일 좀비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내가 나를 조립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_「나의 조립」

“깃털만큼 가볍게도 쓸 줄 알고 납덩이만큼 무겁게도 쓸 줄 아는”(이안) 김개미 시인의 새 동시집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가 출간되었다. 『어이없는 놈』으로 제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로 권태응문학상을 받으며 독보적인 문체로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동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그가 오랜만에 어린이 일상에 초점을 맞춘 ‘생활 밀착 동시집’을 선보인다. 동시집을 펼치면 부드럽고 따뜻한 수프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아이가 우리를 맞는다. 만들어진 기성품이 아니기에 매일매일 새로운 팔과 다리를 조립하고 정신까지 돌아와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기다리라고 선언하는 아이의 맑고 당찬 목소리를 따라 40편의 동시를 만나 보자.

어제 나랑 싸운 애가
웃긴 얘기 한다

애들이 웃는다
선생님이 웃는다

난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아직도 애들이 웃는다
아직도 선생님이 웃는다

나도 웃을까?
웃어도 될까?
_「세상에서 제일 긴 3초」 부분

어제와 오늘이 고만고만해 보이는 어린이의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비밀 하나가 반짝이며 탄생하는 순간,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순간, 참다 참다 시원하게 속을 터뜨려 버리는 순간이 있다. 시인은 마치 투명 인간이 된 듯 살금살금 어린이 가까이 다가간다. 딱히 회장 될 생각은 없지만 선거에서 딱 3표는 받고 싶은 마음(「왜 나를 추천하냐」), 어제 싸운 애가 웃긴 얘기 하니까 3초 만에 무장 해제되고 마는 얼굴(「세상에서 제일 긴 3초」), 지하철 옆자리에서 드라마 보는 아저씨가 우리 아빠랑 똑같은 장면에서 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안 된다 안 된다」)이 생생하게 중계된다. 김유진 평론가의 해설처럼 “‘보편의 어린이’는 무너지고 오직 한 명의 목소리가 생겨”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으레 그러려니 정도로 알고 있던 어린이의 마음과 생각”을 보다 또렷이 만나게 된다.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하는 생각
우리 선생님은 언제부터 선생님이었을까?

어쩌면 선생님도
수업 시간에 졸지 모른다
졸지만 우리가 모르는 건지 모른다

우리 선생님은
십 년도 넘게 선생님 했으니까
졸면서도 눈 안 감을지 모른다
졸면서도 말하고
졸면서도 걸어 다니고
졸면서도 우리한테 졸지 말라 그럴지 모른다

우리 선생님은 진짜
못하는 게 없으니까
졸면서도 우리를 잘 가르칠지 모른다
_「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표제작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와 같이 동시집의 화자는 어린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선생님 생각에 곧잘 빠진다. 우리 선생님은 언제부터 선생님이었을까? 선생님은 못하는 게 없으니까 졸면서도 우리를 잘 가르칠지 모른다(「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자물쇠 달린 다이어리에 중요한 메모가 아닌 고양이 낙서를 하고 있다(「선생님 그림 그리신다」). 다 같이 묵념할 때 선생님도 묵념하는지 궁금하지만 고개를 들어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묵념」). 선생님과 나 사이, 그 아득히 먼 듯 가까운 듯한 간격을 자꾸 의식하면서 호기심 부풀리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무엇이든 우리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른의 근방을 기웃거리며 염탐하다 보면 어느 날엔 기막힌 접점을 찾아낼지도 모를 일이니까.



아픈, 아플 것 같은, 아프고 싶은 기분
조금 낯선 나 자신과 아리송의 시간

학교는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좋은 곳이다. 그 애가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쉬는 시간 종소리가 멜로드라마 속 배경음악처럼 울려 퍼지고(「엘리제를 위하여」), 모두들 똑같다고 하는 은조와 은호가 나한테는 너무 다르다(「은조와 은호」). 이 감정은 사랑일까? 할머니 집 뒷문을 열면 펼쳐지는 참나무 숲을 그 애와 함께 걷기 위해 아껴 두고 싶어지고, 거울 속 나를 보며 고백을 연습하다 이런 내 모습에 멋쩍어한다(「고모 방」). 사랑이라는 말은 없지만 아이는 분명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 김개미 시인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랑에 대한 감정을 꼭 넣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모르면 조급하게 되고 다그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감정의 모양이 늘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예쁠” 것이라는 기대만 있는 건 아니다. 가까워지고 싶은 아이가 생기는 한편 멀리하고 싶은 아이가 생기기도 하고(「죄인가요?」),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 산처럼 커져 부서진 주먹을 쥐기도 한다(「벽을 때렸습니다」). 하루하루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둥긂과 뾰족함 사이를 부유하며, 이 아리송의 시간은 대개 “아픈 기분” 혹은 “아프고 싶은 기분”으로 흘러간다. 시인은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뭉뚱그리지 않고 오히려 그 어두움의 실체를 찬찬히 짚어 나간다. 그렇게 아이는 자기 안의 여러 감정을 낯설게 마주하며 어린 자신으로부터 조금씩 자란다.

아침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뭔가가 다르다
기분이 그렇다
아픈 기분이다
아플 것 같은 기분이다
아프고 싶은 기분이다
_「아픈 기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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