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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도서

  • 책으로 행복한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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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김난도

    "좋은 선생이란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 이 문제의식이 경국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흔들리는 청춘들과 부대끼는 대학교수,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인생선배, 곧 대학생이 될 아들의 아빠, 냉철한 지성으로 시행착오를 줄일수 있게 도와주는 '진짜어른'멘토 김난도.
    교수님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여 학생들은 그를 '란도샘'이라 부른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이 직접평가하는 '서울대학교 우수강의'에 선정되고, 대학이 수여하는 '서울대학교 교육상'을 수상하는 등, 강의와 학생지도에 대한 열의를 인정받았다. 그의 강의는 서울대에서 가장 빨리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자문과 강연활동을 하며 세상이 어떤인재를 원하는지 듣고, 학교와 온라인에서 청춘들과 소통하며 '어떤 인생을 개척할 것인가'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있다. 주요 일간지에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노트'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등, 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난도 교수는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면서 고충을 알게 됐다. 본인은 잘하고 있는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인생 선배로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주저 않고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아무리 독한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라는 메시지를 담는 '슬럼프'라는 글을 포털사이트에 연재하기도 하고, 멘토링 에세이집 '아프니까청춘이다'라는 책도 낸 것이다.

  • 작가 권비영

    고종의 막내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 하지만 존재 자체가 비극이었던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그린 소설 “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씨. 두 아이를 키우며 습작해오던 권비영 작가는 1995년 신라문학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06년 첫 작품집 ’그 겨울의 우화’를 출간했는데 작가 자체도 책을 내는 데 의의를 뒀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소설가 중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운 그녀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으로 인생이 360도로 바뀌게 되었다. “대한제국 재조명 기사를 보고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알게 됐어요. 마치 운명처럼 ‘덕혜옹주’에게 끌렸죠. 글을 쓰지 않고서는 베길 수 없었어요.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덕혜옹주’는 워낙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다가 우리나라에는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만 무성할 뿐 검증된 자료가 없었다. 여러 도서관을 뒤져 ‘덕혜옹주’에 관한 자료를 찾았지만 대부분 단편적인 내용들이었고, 종종 TV드라마나 연극에서 다뤄진 이야기들이 전부인 마냥 알려져 있었다. 그 와중에 일본 학자 혼마 야스코씨의 ‘덕혜희(德惠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소설의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덕혜옹주’의 흔적을 쫓기 위해 대마도를 찾은 것도 여러 번. 덕혜옹주와 다케유키의 결혼기념봉축비 등 관련 유적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공부했다. 권비영 작가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덕혜옹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그렇게 자료 수집에 1년, 집필에 1년, 개작에 1년… 3년이란 시간을 오로지 ‘덕혜옹주’와 살아온 그녀였다.

    “2010년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덕혜옹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물론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버려진 한 여자의 삶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 여인의 모습은 국권을 빼앗기고 치욕스럽게 살아야 했던 우리의 역사, 혹은 선조들이기도 하니까요.” 권비영 작가는 책을 통해서나마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조선의 황제와 황족들,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받쳤던 선조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작가 조세희

    <주요저서>
    돛대없는 장선(1965), 문은 하나(1966),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하얀 저고리(1990), 침북의 뿌리(1986)



    1970년대 우리 소설의 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로 조세희를 드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여러 평론가들에 의하여 지적되어 온 바와 같이 그의 작품, 특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해 그가 충분히 한 시대의 의식을 반영시켰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는 1965년 「돗대 없는 장선」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새로운 소설을 발표하지 않고 침묵하다가 갑자기 10년만인 1975년 단편 「칼날」을 필두로 이어지는 “난쟁이” 연작을 발표하게 된다. 그는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어서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가 우리 땅 독재자와 독재자가 얼마다 못되게 국민을 옥죄는지, 그 독재자와 독재자의 시대와 싸워야 되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것은 그대로 글쓰는 것밖에 없어 작품을 쓰기 시작” 했다고 말한다. 계속 침묵을 지키던 그가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경제의 고속 성장 이면에 감춰진 복잡하고 추악한 현실에 직면해서는 더 이상 문학적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올해로 출간 31주년을 맞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2005년 200쇄 돌파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낳으며, 지금까지 105만부 이상 팔렸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난쟁이들의 소리에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이 시대의 문제의 핵심, 인간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작가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염원하는 하층민들의 열망을 제시하면서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랑이 전제되어 있어야 함을 말했다. 누구나 평등하게 사랑을 전제로 한 난쟁이가 꿈꾸었던 삶은 바로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이며, 19670년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작가 신경숙

    <수상내역>
    1993 한국일보문학상 (한국일보)
    1993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문화부)
    1995 현대문학상 (현대문학)
    1996 제11회 만해문학상 (창작과 비평사)
    1997 제28회 동인문학상 (조선일보)
    2000 21세기문학상
    2001 이상문학상
    2006 제14회 오영수문학상 수상 (오영수문학상선정위원회) 단편소설`성문 앞 보리수`



    소설가 신경숙씨는 내밀한 감성과 섬세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작가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책읽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소녀로 자란 그는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 "내 몸 속에 각인된 유년의 추억이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사춘기 때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로 올라와 공부했던 작가는 당시에는 막연하게 도시에 가면 많이 다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울로 와서 작가의 꿈을 꾸면서 소설가가 된다면 ‘엄마 이야기’를 써 보리라 생각했다고. 그 꿈을 등단한지 25년이 돼서 이루게 됐다. 소설의 출발은 그의 엄마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자전적 요소도 있다. 『엄마를 부탁해』 속에 나오는 소설가인 큰 딸이 바로 신 작가의 분신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작가가 자신의 이전 텍스트를,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필사(筆寫)하며 다시 한줄 한줄 써내려간 소설이다. 어떤 작가를 두고 평생 한 작품만을 쓰고 또 고쳐 쓴다고 말하는 것이 더없는 경의의 표현이 될 수 있다면, 이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소설 속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이 ‘소박한 희망’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이 소설의 사회적 의미와 파장력은 엄청나게 크다 할 수 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최첨단 기술문명을 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작가의 낮고 깊은 목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뜨거운 반성과 눈물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문학사에 이 소설처럼 본격적으로 어머니와 가족의 정을 체감하도록 한 작품은 아주 드문만큼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백낙청)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늘 배경으로 묻혀 사라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로서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는 작가의 간곡함은 읽어가면서 곧 우리 모두의 소망으로 바뀌게 된다.

  • 작가 한상숙

    아름다운 성장소설을 가지고 청주의 시민을 찾아 온 한상숙 작가는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지역의 작가이고,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가족애를 그린 「당신의 손」이, 지역주민에게 따뜻한 공동체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에게 글쓰는 작가와 교직은 하늘이 정한 천직이었다.

    교직에 몸담고 계셨던 아버님은 항상 책을 읽고, 글쓰는 모습을 보이셨는데, 출판비용이 엄청났던 당시에 환갑비용으로 꼭 책내기를 소망하셔서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동생(한상남) 또한 알려진 시인이다. 이처럼 그녀의 글쓰기는 타고난 재주였고,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내력이었다.

    그녀가 소설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24세 때에 여성동아에 투고 한 글이 본선에 오르면서부터 이다. 그 후, 오랜 시간 그녀는 오로지 살아가는 이유가 글 쓰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언제나 손에서 습작노트를 놓지 않았으며 글을 읽고, 쓰느라 잠을 자지 않는 아내요. 어머니였다고 가족들은 회상한다. 그녀의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유독 1,500매 이상의 장편소설만을 고집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5년에 한편씩 완성하였는데, 3번의 문학상 공모전에서 본선에 올랐고, 마지막 ‘제4회 소설문학 공모전’에서는 수상직전에 고배를 마셔서 그녀의 수상에 대한 애타는 갈증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늘 새롭게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나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과도 같았으리라.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수상의 기쁨은 전혀 뜻하지 않은 분야에서 들려왔다. 하루 만에 써서 응모한 단편 '부부'로 1986년 오늘의 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역시 시간에 쫓겨 제출하고, 응모한 사실조차 잊었던 동화 '봄볕아래서' 로 1996년 MBC창작동화 대상이라는 큰 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녀는 단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내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에 오르니 이렇게 편안한 것을...저는 늘 제 힘에 부치는 까마득히 높은 산만을 바라보고 오르려 애를 썼나 봅니다.’ 라고.

    아마도 욕망을 모두 내려놓아야 귀한 것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또한 전문직 여성으로서도 그녀는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초등교사에서 초대공립유치원장까지 빈틈없는 일처리로 이름 높았으며, 초등교사 시절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열악한 유아교육계에서 입문한다거나, 마감기일에 아무리 쫓겨도 직장 내에서는 절대 글쓰기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녀의 식견과 외곬수적인 성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평생을 소설쓰기에 몰두한 그녀는 글쓰는 즐거움보다는 어떤 필사적인 숙명처럼 느끼고 고군분투 했다고 술회하는데, 은퇴하고 물러앉은 지금부터는 진심으로 즐거운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 작가 한비야

    바람의 딸을 넘어서, 이젠 온 세상에 따스함과 생명을 불어넣는 "빛의딸"이 되고 싶다는 한비야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5년간 다방 DJ를 비롯하여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번역일을 했지만 학력 때문에 번역료를 제대로 못 받는 것이 억울해 홍익대 학교 영문과에 진학했고, 그 후 미국 유학을 떠나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 홍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홍보회사 버슨-마스텔라에서 당당한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는 여행할 만큼 돈이 모여지자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오지여행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선물해준 세계지도를 보고 계획했던 "걸어서 세계일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거룩하고 폼 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일에 최선의 최선을 다해 결국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래서 자유롭고 거침없는 그의 행로는 이 시대의 새로운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곳 어느 곳에서라도 우리는 한비야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녀의 빛의 딸로서 따스함과 생명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 작가 고미숙

    그녀는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하여 인문학적 교양과 철학이 부재한 현대인들에게 고전의 재미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성 고전 평론가이다.

    특히<연구공간 수유 +너머>은 소장 인문학자들의 연구소로 수유리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는 남산 아래 후암동에 위치하여 도서실, 아뜨리에, 카페, 식당, 음악, 체력 단력 공간, 책 판매 등 연구와 글쓰기를 위한 기본 공간을 만들어서 지식 공동체로서 ‘삶의 새로운 양식’을 모색하고 있다. 위치는 교통은 불편하지만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보이고 남산의 숲이 창으로 다가오는 모든 회계가 공시되며, 연구원들의 아기를 위한 육아공간과 조별로 마련하는 간단한 점심과 지속적으로 열리는 세미나와 어린이를 위한 주말 한문 교실 등 인문학 대중화에 한 변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고전평론가’로서 고전의 리라이팅을 통해 현대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매니저 역할을 하고 싶다하니, 도서관이 그 매개의 중요장이 됨은 의미가 있다. 저서로는 『비평기계』(소명출판,2000)『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책세상, 2001),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휴머니스트, 2004),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 『고전문학의 라이벌』(한겨레신문사,2006),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2006)등 다수가 있다.

    책에 그리을 그려준 이 부록은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와서 코끼리를 타고 열하로 간 듯 한 표지와 더불어 한 주제마다 환상적인 여행기의 문을 연다. 특히 첨부된 지도 자료와 박지원의 연보, 『열하일기』원목차 등은 저자의 지적인 정직함이 엿보여 기분이 좋다

  • 작가 심윤경

    작가 심윤경에게 붙어 있는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과학도라는 소개 글을 읽다가 동물을 좋아해서 ‘ 동물학과’에 가려다가 학과 이름이 바뀌어서 ‘분자생물학과’로 진학했다는 순진한 대답이 왠지 모를 호기심과 친근감이 들었다. 또 사진으로 만나는 작가는 젊음을 밖으로만 발산 하려는 의지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람이 소통하는 순면(純綿)처럼 느껴져 아름답다.

    글쓰기 수업 한번 따로 한 적 없고, 단편 한편 발표한 적 없던 진짜 초보 작가가 1998년부터 틈틈이 쓴 데뷔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2002년 제 7회 한겨레 문학상을 단번에 수상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뒤이어 2004년 출간된 『달의 제단』, 2006년의 『이현의 연애』이 단 3권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단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과학도에서 문학으로 인생의 길을 바꾼 용기, 국어사전 3권과 관련 도서들을 광범위하게 읽어내는 열정, 글쓰기 위해 필요한 많은 주제에 대한 공부 등 그녀는 치열하고 시간 배분을 정확하게 하는 우등생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또 그녀가 진로를 바꾸는데 남편이 첫 지지자였다 든가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모든 소년의 심성을 삶 속에서 보여 준다’는 남편에 대한 극찬에서 참 유복한 젊은 여성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것은 그녀가 선량한 눈을 가지고 상대를 유심히 보고 있는 진지한 작가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삶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석하고 끝없는 모색을 하면서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를 택해 개척하는 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앞으로 나올 그의 소설들이 준비가 탄탄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케 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보수적인 사람이며 옛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또 소설 형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이고 뚜렷한 서사구조와 틀을 선호하며 작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쿨한 사랑, 쿨한 관계, 쿨한 소설, 쿨한 영화 보다는 그렇게 착가해버리기에는 너무도 구차하고 남루한 인생이므로 아예 재조차 남지 않게 다 태우고 사그라지는 옛날식의 정열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작가를 ‘Director'(감독)로 규정하고 모든 이의 입장을 골고루 배려하며 자신의 호불호에 연연하지 않으려하는 치우침이 없는 시야를 가지고자 한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치우치지 않고 글을 씀으로써 역지사지가 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소통이 일어날 수 있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세대화 신세대, 옛 것과 새 것, 남자와 여자 등 모든 관계에서 문제는 실제로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꺼리는 마음에서 발생하므로 한 발짝씩만 물러나서 한 손을 내밀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관계이며, 특히 세대간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심을 갖고 선입관을 버리고, 다르다는 것을 작가는 말한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은 우리만큼 못 누리고 사셨으니까요’ 라고 사근사근 속삭인다. 작가의 마음에 만들어져 있는 정원에서 향기가 난다.

    그녀의 이런 마음이 동구안에 들어갔나 보다.

  • 작가 이미륵

    ㆍ주요저서 : 장편<무던이>,<압록강은 흐른다>,<이상한 사투리>, 중 단편집<이야기(lyagi)><독일에오스 출판사,1974), <압록강에서 이자르강까지(von yalu biszur lsar)>(한국분도출판서, 1982),<이상한 사투리(der andere dialekt)>(1984) 등 세 권의 유고집이 있다. 또한 여러 편의 수필, 한국의 역사?문화?정치에 관한 글, 그리고 <한국어문법>(1927)등을 남겼다.

    ㆍ작품특징 : 한국을 배경으로 동양문화의 전통과 풍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썼다. 특히, 1946년 대표작인 <압록강은 흐른다>가 독일에서 발간되어 전 후 독일문단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조선 말기 1899년 황해도 해주엣 태어났고, 보통학교를 마친 후 강의록으로 독학하여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한 까닭으로 일본 경찰에 수배되어 상해와 프랑스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하였다.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철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1928년 이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대학에서 한학과 한국학을 강의 하였다.

    이미륵은 193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가 1946년 독일어로 발표한 자전 소설 『Der Yalu Fliesst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 해 ‘독일 최우수 소설’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1960년 전혜린에 의하여 처음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그 밖에 영어와 프라스어로도 번역, 소개되었고, 독일에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 압제 하에 어머니와 고향, 그리고 모국을 떠나 이방의 나라에 살았던 이미륵은 비록 독일어로 글을 썼지만, 그의 모든 글의 소재는 그가 남겨두고 온 한국 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나치스 시대를 경험하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 속에서 정서적 공항을 겪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이미륵의 글은 동양과 서양의 시공을 초월한 따뜻함과 감동을 주었다.

    그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50년 3월20일 독일 뮌헨 교외의 그래펠링에서 사망하였는데,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손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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