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국: 김애란 소설
김애란 지음 ; 정수지 그림창비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9-16
페이지수 : 84
상태 : 승인
그림이 그려진 김애란의 단편, 참 아름다운 책이다. 좋은 단편소설을 이렇게 만드는 것도 썩 괜찮은 방법 같다. 얇은 두께라 부담없이 집을 수 있는데다 그림이 친근감을 주고 거기에 남은 여운까지 생각하면... 여러 편의 단편을 한번에 읽는 것보다 이렇게 한편을 읽는 것이 남기는 감동도 진하고 곱씹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기에 가격 부담도 덜 테니 일석 몇조가 되려나. 책 양식이 마음에 들어 사설이 길었다.
역시 김애란의 작품이다. 작가는 칼국수 식당을 했던 엄마의 삶을 '칼'과 묶어 그려낸다. 제목인 '칼자국'은 엄마의 삶에 드리워진 상처이며 그림자에 대한 비유려니 했다. 그림을 보며 다시 한번 뒤적거리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엄마의 가장 중요했던 도구인 칼은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칼로 살아냈다. 베이고 다치면서도 남편과 자식을 부양하며 살아냈다. 가장 진한 칼자국은 상처가 아니라 딸이었을 것이다. 딸에 대한 사랑도 칼자국이고 엄마에 대한 딸의 사랑도 칼자국이었다. 엄마의 죽음 뒤에야 딸은 엄마의 삶을 총제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글을 읽으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에 대해 이러한 회상을 하다니.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아마도 이러지 못할 것 같다. 엄마의 삶을 나의 미움을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을까. 엄마를 탓하지 않는 마음으로 엄마를 기억할 수 있을까.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 엄마의 방식대로 날 사랑했다고 가슴을 치며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될까. 엄마에게도 사랑의 자유가 있다는, 내가 사랑하면 그만이라는, 내 감정에 충실하자는 깨달음은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십이 넘어서도 엄마에게만은 사랑 받고 싶다.
엄마는 나에게 풀 수 없는 문제이다. 긴 괴로움 끝에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겨우겨우 눌러놓은 감장독이다. 그 안에서 익는 묵은지가 썩는 것이 아니고 발효가 되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김애란의 소설이 엄마에 대한 이러한 나의 마음을 다시 또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그 마음에 다른 빛을 드리우지는 못한다. 부럽다는 마음이 더해질 뿐, 여전히 엄마는 나에게 풀 수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