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장편소설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이미애 옮김민음사
( 출판일 : 2014-02-07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9-09
페이지수 : 360
상태 : 승인
읽기가 쉽지 않다. 집중을 하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인물의 내면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시점이 계속 바꾼다. 이 사람의 내면과 상황 인식이 드러나다가 몇 문장 뒤에 바로 다른 사람의 내면과 인식으로 바뀐다. 아무런 예고도 없는, 마치 장면 전환처럼 느껴지는 서술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별다른 사건없이 전개되는 사소한 일상들이 잔잔하다. 하지만 그 잔잔함은 표면적이다. 표면을 지나 드러나는 의식의 부분들은 시끄럽기 그지없다. 계속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생각한다. 주인공 램지 부인의 죽음은 그 사건을 알리는 몇 줄의 문장으로 처리되고 10여년 후의 시간이 다시 의식의 흐름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서술 방식이 이전의 소설들과 비교해 얼마나 새로웠을 것인지 지금 읽는 나도 이렇게 감개무량한데 그 시대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이 아무리 새롭더라도 내용과 주제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울프는 <등대로>에서 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역동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주인공의 죽음은 갑작스러지만 사건과 전쟁으로 사람들의 죽음은 계속된다. 그 죽음을 뒤로 하고 다시 같은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비슷한 갈등 속에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빈 자리의 사람을 애틋하게 떠올리고 그리워 하면서 말이다.
"삶은 여기 정지되어 있으며 지속된다"라는 작품 속 문장 안에는 삶과 죽음에 내재한 가벼움과 무게감을 동시에 함축된다. 램지 부인의 사후 10년 뒤 가족들은 가지 못했던 등대로 향한다. 대화가 거의 없는 이들의 마음에는 증오와 무관심이 자리한다. 그 마음은 한 마디의 말과 몇 가지의 발견으로 뒤집히기도 한다. 변화가 거의 없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쉬이 감지되지 않는 변화이지만 그들은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정지되어 있으나 지속되는 삶은 마치 등대와 같다. 살아남은 이들은 등대처럼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제 빛을 발한다. 그들이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 등대처럼 존재하듯 그들도 등대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는 10여년의 시간은 실바람의 속삭임 같은 서술로 묘사된다. 허물어진 그 장소에 지나는 가벼운 바람의 정체는 아무도 없는 듯하지만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과거는 보이지 않아도 숨결처럼 남는 것이다. 잘 살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대로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네 마음만큼 다들 이렇게 어지럽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이 삶이 축복이 아니더라도 고통만은 아닐 것이라는 직관을 전해주기 때문일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윤동주의 시에 담긴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이런 내용과 형식이 그저 혜자스럽다. 울프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