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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장편소설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9-08
페이지수 : 287 상태 : 승인
신관 사또들을 놀라 죽게 만든 처녀 귀신 아랑의 이야기를 새롭게 쓴 소설이다. 요즘 읽고 있는 김영하의 다른 단편들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 조금 놀랐다. 대부분의 소설에 외로움이나 상실감 등 사람을 향한 정서가 넘쳐 흐르던 김영하였다. 주제가 이야기이다 보니 감정이 거의 배제될 수 있었겠지만 이런 담백한 이야기를 읽으니 새로웠다. 사실 이 소설을 절대 담백한 분위기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읽고 있는, 읽은 김영하의 단편들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는 <살인자의 기억법>의 저자였다. (아무래도 나는 김영하의 소설은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좋다.)
새롭게 쓴 아랑의 이야기는 추리물이다. 감춰졌던 이야기가 이랬을 것이라는 가정은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남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해서 한번더 추리를 더한 '더블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하는 아랑의 억울함을 당시 백성들이 느낀 고통으로 치환한다. 가장 약한 아랑은 여전히 희생자이다. 새로 쓴 이야기에서 아랑의 죽음은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이용될 뿐이다.
죽인 자는 권력자이고 사건을 숨기는 자는 그 아래의 하수인이다. 추리물답게 범인이 잡히고 그 범인은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단죄하는 사람은 대놓고 나쁜 사람이다. 사건의 실체가 밝혀져도 처벌 받는 대상은 한정적이다. 오히려 사건의 내막을 밝힌 사람이 내처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축소, 변경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실제 단죄는 권력을 비껴가고 권력의 하수인만이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유통된다. 이렇게 변경된 이야기는 액받이, 즉 미움을 받을 대상을 축소해 지정하기 마련이다. 문제 일부가 드러나고 해결되면서 진짜 문제는 감춰진다. 아량 이야기에 대한 이러한 추적은 허구지만 감춰진 현실에 대한 폭로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적인 서사에 대한 대항은 이 책과 같은 다른 책이 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과 소설 속 소설인 <정옥낭자전>이 끊임없이 이러한 대안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김영하가 소설에서 언급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와 같은 소설 역시 이 작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야기일 테다. 의도를 가지고 꾸며진 이야기에 대항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인상적인 인물은 이부사였다. 그는 말미에서 핵심적인 사실 외에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냉소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야기의 핵심을 꾸미지만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조력자이지만 완전한 조력자는 아니고 하수인이지만 권력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기회주의자라 비난할 테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두둔할 수도 있다. 그가 감춤으로써 살아난 사람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죽음에 이르른 대목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는 제 마음을 보이지 않기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 예측할 수가 없다. 그는 '나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온 사람이다. 나비는 이 이야기에 권선징악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이미 일어난 일을 가장 해를 입는 사람이 최소한이 되도록 수습하면서 착하게 살라는 의도를 남긴 것이 아닐까. 나는 그를 진시이나 정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면을 읽는 사람으로 본다. 진실은 때로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한다.
나는 이러한 이부사가 독자로 느껴진다. 이야기를 읽은 사람의 행보에 이야기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야기를 어떤 나비로 기억할지 결국 이야기의 갈무리는 독자에게 맡겨지는 것이지 않을까. 김영하가 새로 쓴 아랑 이야기는 나에게 이야기는 그저 꿈이 아니라는 나비를 남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더라도 현실에서 나는 진실을 지향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이 거창한 이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삶에서 내가 해야 할 당위나 최선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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