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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지음 ; 박현섭 옮김민음사 ( 출판일 : 2009-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9-06
페이지수 : 205 상태 : 승인
유명세는 익히 듣고 어딘가에 실린 한두편을 보았을 뿐 체홉의 단편소설집은 처음이다. 요즘 우리나라 단편소설을 읽고 있는 중인데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물론 1800년대 후반의 러시아 작가 단편과 지금 우리나라 단편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하루 이틀 사이로 읽다 보니 비교가 되는 게 어쩔 수가 없다.
체홉의 단편소설은 대부분 분량이 짧고 사소한 일상이 그려진다. 그래도 짜임새가 튼튼하고 위트와 재기가 번득인다. 작가의 위트는 웃음을 자아내고 재기는 그 웃음 속에 담긴 슬픔의 정서를 포착해 담는다. 사소하고 가볍게 느껴지던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면 날카롭고 무거워진다. 삶이 이렇다는 답을 주지는 않지만 그 무게감을 받아들이게 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무게감은 삶을 열심히 살라는 류의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아둥바둥하며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체홉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감을 받아들이면 좀더 삶이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이야기 속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티푸스'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장티푸스나 발진티푸스 등 티푸스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며 의사였던 체홉의 경력이 반영된 것일 테다. 티푸스는 죽음에 대한 체홉의 관점을 연결시킨다. 그 관점이 나는 자꾸만 러시아 소설의 분위기와 연결된다. 단편임이고 위트가 있음에도 상당한 엄숙함이 작품들 속에 내재되는데 그간 읽었던 톨스토이나 도스트예프스키 등 다른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 분위기에서도 느껴지던 것이었다. 그것을 러시아의 광대한 대지와 같은 자연 환경적인 면과 연결시켜 생각했었는데 체홉의 소설을 보니 종교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듯하다. 러시아의 기독교는 서양의 기독교와 달리 구분되는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체홉은 러시아 정교회라 부르는 자신들의 종교에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내지만 교회에 순중하는 민중들의 경건한 마음과는 결을 같이 하고 있다. 그 역시 삶에 경건하기에 이러한 단편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 경건함이 일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 전체의 분위를 엄숙하게 갈무리한다.
체홉의 단편을 읽으니 그저 자연스레 삶에 대한 나의 관점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주교>라는 작품 속 주교의 삶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두의 추앙을 받으며 열심히 제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허무감을 느낀다. 결국 티푸스에 걸려 죽는다. 그는 금방 잊혀지고 그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의 주교였다는 이야기를 할 때 기억된다. 이 삶에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중편 <이반 알리치의 죽음>에도 연결되는 주제이다.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주교는 모두가 편하게 대하는 다른 신부를 보고 자신의 소년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없이 그거 제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을 보며 혐오감을 느낀다. 이는 결국 제 삶에 대한 부정이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다들 열심히 산다. 그러나 그 빈 공간은 열심히 사는 것으로는 채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찾은 그 빈 공간의 주인은 '나'였다. 나답게 살지 않으면 계속해서 허무했다. 체홉의 주교를 떠올리며 어떤 역할인 아닌 나로 사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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