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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최홍규 옮김평단문화사 ( 출판일 : 2008-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9-03
페이지수 : 327 상태 : 승인
읽으면서도 다 읽고서도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이 세련됨이라니, 이 우아함이라니,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부여된 핍진성이라니, 이 소설이 1928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니. 남자와 여자를 오가며 수백년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토록 수긍이 가는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작년에 읽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도 참 좋았는데 이 작품은 더 좋았다. 울프는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 이런 소설을 쓴 걸까. 내용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추척하고 싶다.
영원하라는 여왕을 명령을 들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영국의 귀족 올랜도. 러시아 대사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배신을 당하고 허무감에 빠진다. 문학에 빠져들지만 가식적인 작가의 행위에 질려 버리고 어느새 터키 대사가 된다. 올랜도는 갑자기 여자가 되고 영국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작중 인물 올랜도는 남자였지만 갑작스럽게 여자가 된다. 남자인 올랜도는 사랑과 사람에 배신을 당해 우울하고 개와 자연에 마음을 의지한다. 여자가 된 올랜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1900년 초반이나 그 이전 소설에서 사랑에 배신 당한 우울한 여자의 모습은 자연스러운데 남자가 그런 것은 어딘가 상당히 전복적이다. 여자를 사랑밖에 모르는 인형으로 그리던 당시 시대상에 대한 반전이 읽힌다. 분명 의도가 있는데 의지가 읽히지 않는다. 작가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서술자'의 서술만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읽히지 않는다. 때문에 성별에서 오는 과잉도 절제도 없다. 소설 내용인 성별을 오가는 올랜도보다 더 신기방기한 일이다.
세상은 올랜도의 눈과 마음을 통해 전개되며 작가가 아닌 서술의 힘을 빌어 서술된다. 작중 인물의 눈은 작가를 지운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기묘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그들이 당황하기에 독자들의 저항감은 사그라든다. 독자들은 그 아무렇지도 않음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읽고 남녀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여성주의가 아닌 자연주의에 가깝다. 비판이나 비난을 하지 않고 개인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세상을 말하기에 충분하다. 설명을 통한 작가의 개입이 없어도 괜찮다.
왜 울프의 소설을 모더니즘의 선구라 하는지 이 작품을 통해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올랜도의 성별을 감쪽같이 바꾸는 마법사와 같은 이 서술자의 중개를 울프는 어떻게 구상해냈을까. 시대의 흐름을 탄 직관의 힘이었을까.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은 최초의 한 사람이 기록되지만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었다. 문예사조 역시 그러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자가 된 올랜도에게는 '두근거림'이 있다. 삶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 있다. 여자가 된 그녀를 세상은 가두지만 그녀는 그저 올랜도이다. 지금의 페미니즘의 귀감이 되는 모습인, 세상의 정의에서 자유롭다. 페미니즘이 울프를 시조로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로 수긍이 간다. 새로운 인식을 보여준 이 멋진 여성 작가를 어떻게 놓고 싶겠는가. 그러나 대립과 대결로 치닫는 지금의 젠더 양상이 울프는 너무난 안타까울 것 같다. <올랜도>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그저 그 시절을 사는 사람이다. 울프의 <등대로>를 대출해 놓았는데 <댈러웨이 부인>도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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