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트레인: 문지혁 소설
문지혁 지음현대문학
( 출판일 : 2026-02-05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8-31
페이지수 : 212
상태 : 승인
문지혁의 신작 소설이다. '한국어' 시리즈에서 보이는 말을 참고 머금다가 내뱉는 듯한, 읊조리는 건 아니지만 독백하는 듯한 문체가 여전하다. 내용과는 별개로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호텔팩으로 1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 여행을 하는 내향형의 진한 고충이 읽혀 읽는 내내 웃음이 난다.
작가의 버릇처럼 무겁게 쓰고 있지만 가볍자면 한없이 가벼운 내용이다. 문지혁은 여자(1번 여자)를 잊으러 간 여행에서 혼자 여행을 온 여자(2번 여자)에게 하루 함께 여행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특유의 주저함으로 아니오가 아닌 상황에 이끌려 버린 '거절 아닌 거절'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잊어야 할 여자를 까마득히 잊고 그 여자만 생각한다. 여기서 끝난다면 이 소설은 무미건조로 끝났을 것이다. 끝무렵에 딱 몇 줄짜리 반전이 지루해졌을 이 서사를 유쾌하게 만든다. 물론 예상 가능하고 암시도 등장하지만 예측하더라도 재미있는 결말이다.
작가는 유럽을 이동하는 내내 타야 했던 야간 열차를 제목으로 가져 왔다. 여행지의 특색이 드러나기 보다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야간 열차는 그 사람들과 문지혁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여행 동안 그가 본 것은 유럽의 풍경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불편했던 사람들이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사람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듯하다. 누군가에 대한 정보의 양과 나에 대한 태도로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한다는 건 능동이 아니라 수동일 수도 있다.
'한국어' 시리즈에서 소설을 이끌어갔던 작법 강의는 이 작품에서 잠깐 등장해 주제를 드러낸다. 그는 소설 작법의 하나로 3인칭 시점을 쓸 때 한 장면에서 어지럽게 이 인물 저 인물 머리로 들어가지 말아야 하며 편집자적 논평을 취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가 쓴 여행을 하며 쓴 소설이었고 여행 내내 취했던 태도이다. 여행을 함께 사람들과 1번 여자와 2번 여자에 대한 생각과 평가는 온통 그만의 시각이었다. 이후 취객으로 오인 받아 택시에서 끌어내려지는 경험은 그 역시 그런 상황에 놓였음을,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안다는 건 착각이며 우리는 늘 오해 속에서 살아간다. 1번 여자에서 2번 여자로 바로 갈아탔던 문지혁처럼 우리는 자기 맘도 잘 모르고 홀딱 속는다.
여행에서 계획이 취소되는 건 언제든 있는 일이다. 지금의 문지혁은 인생 역시 그러한 취소와 변경 속에 놓여 있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어느날 갑자가 과거가 소환되기도 하지만 지금의 내가 굳건하면 그 과거는 굳이 버리려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해결된다. 2번 여자를 뒤쫓는 장면을 3번 여자가 볼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물론 4번 여자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끝나는 날까지 결말은 알 수 없는 게 또 인생이다.
소설을 참 잘 쓰는 작가이다. 하지만 네 권째 읽으니 또 물리는 병이 도진다. 문지혁은 당분간 거리를 두고 그의 남은 다른 작품은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앗! 대출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에 문지혁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 일단 그것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