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동아시아
( 출판일 : 2025-06-26 )
작성자 :
김○진
작성일 : 2026-08-26
페이지수 : 367
상태 : 승인
나와 내 동생은 나름 첨단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로봇업계, 동생은 AI업계. 듣기만 한다면 누군가는 '우와'할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우리도 그저 회사 안에서 굴러가는 하나의 톱니바퀴일 뿐이다. 톱니바퀴라니. 노동자는 아직 18세기 산업혁명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읽은 모 소설의 주인공은 우주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달에 가려다가 중간에 조난당하였다가 지구로 복귀한다. 그는 우주에서 1년간 표류하였지만, 지구에서는 이미 10년이 흘렀고 졸지에 주인공은 10년뒤의 미래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 세계관에서는 그런 일을 겪는 우주조난자가 흔하지 않아도 가끔 발생하고, 그렇게 돌아온 귀환자들의 대부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자살의 이유로 주인공은 갑자기 미래에 살게 된 것이나 다름없는 조난자들이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 소설이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생각났다. 인공지능, AI의 침략에서 가장 먼저 공격당한 영역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바둑계라고 생각한다. 일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공개 대국을 벌였을 무렵만 해도 아직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인간, 그것도 지구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것이나 다른 없는 이세돌 9단(당시에 바둑을 몰라도 이세돌은 알 정도로 그는 바둑계를 넘어 한국의 유명인사였다.)이 속된말로 알파고에게 '발렸다'. 단 한번의 대국을 가까스로 이긴 이세돌 9단이 경이롭게 보일 지경이었고, 단순한 개인의 패배라고 볼 수 없는 그 사건이 바둑계에 미친 영향은 책에 서술된 부분대로 표현하자면 어마어마했다.
나는 바둑을 잘 모르지만 좋아한다.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기는 하지만(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는 이유도 본문에서 서술된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것은 단순 게임 이상의 것이다. 사람들은 본질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어떤 것은 본질에 집중해야 하고 어떤 것은 본질 그 너머의 것을 보아야한다. 예술이 특히 그렇다. 본질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모나리자를 칼로 그어버려도 '아주 오래된 캔버스에 옛날 사람이 물감을 발라놓은 것일 뿐이잖아?'라고 태연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은 '의미'를 가지고 '서사'를 가지기에 예술이 된다. 바둑은 대국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된다. 밤하늘의 별보다 수가 많다는 바둑. 그 수많은 수 중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내고, 상대방의 의도를 읽으면서 바둑판 위에 전개되는 흑과 백의 싸움이 바둑의 대국인데 어떻게 예술이 아닐까. 승과 패가 있으니 스포츠이고 단순 게임이며 승부일 뿐이라고 말하는 기사들의 의견도 있다.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승부욕이 있고 아름다웠으니 패해도 후련하다고 말하는 기사는 없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기사는 이기기위한 최선의 수가 아닌 다른 수를 둔다.
본 책에서는 '소설 작가'인 작가가 AI가 바둑계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보고 분석하며 AI가 문학계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고 상상하며 그 때 '작가'로서의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찰한다. 그렇기에 '먼저 온 미래'인 것이다.
나는 첨단 업계에 일하고 있지만 AI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본 책의 7장부터 10장에 걸쳐서 길게 설명된다. 요는 인간은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기술이 인간을 변화시키고,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인간의 생활과 행동, 사상을 변화시킨다(그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인간은 본인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한다면 인간은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로봇을 도입하는, AI를 도입하는 기업들과 사회 언론들은 로봇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말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준다면 누가 이득을 볼까? 그건 사업주일 뿐이다.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면 국가 단위 차원에서는 소득세로 거두어들이는 조세가 줄어들게 된다. 로봇세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간이 국가에 지불하는 소득세 및 각종 세금이 줄어들 때 로봇과 AI로 매출을 유지 혹은 증대한 기업에 추가로 세금을 거두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로봇세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6개월, 1년만에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만 해도 AI로 만들어내는 영상, 그림을 우리는 '간신히' 구분해내고 있다. 만약 그것을 더이상 구분해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다면 수많은 영상 작업자와 일러스트레이터, 화가들은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럴수록 더욱더 난해한 현대미술만 판을 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AI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책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AI시대의 가장 최악의 현상은 소비자들이 매체를 즐기며 항상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거 AI로 만든거 아니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림을,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AI로 만들어낸 결과물인것을 알게되면 '에이, 뭐야. AI였네.'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 이후 반응은 '뭐야, 별거 아니네'하고 실망하거나 '뭐야 AI로 이런것도 만들어낼 수 있어?'하고 황당해 하거나 두가지 중 하나다. 컨텐츠를 소비하는 데 있어서 '분별력'까지 갖추어야하는 피로감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있으며, 동시에 결과물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AI가 발달해서 사실적인 영상을 어려움없이 만들게 된다면? 그렇다면 누가 지금처럼 영상소프트웨어로 만드는 광고영상을 '대단하다' 내지는 '세련됐다'며 감탄할까? '에이, 이런거 나라도 만들지'라며 그 결과물을 우습게 볼 뿐이다.
본문에 나와있는 내용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AI바둑이 보급화 되며 고수 기사들에 대한 권위, 존경심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AI바둑의 보급으로 실력있는 기사가 많이 등장했다고 하지만 기풍을 잃어버리고 단지 승패에 대한 이야기 뿐이고, 기사들의 수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고민하기보다는 AI바둑 프로그램에 나타나는 최선의 수와 몇% 일치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할 뿐이라면 바둑은 도대체 무엇이 되어가는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약 프로 바둑 기사였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아주 모욕적이었을 것 같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은 본인들의 인공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아보기 위해(테스트하기 위해) 체스보다 수가 더 많고 고차원의 게임이라고 하는 바둑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구글이 본인들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쇼케이스였을 뿐인것이다. 그리고 그 쇼케이스와 그 프로그램에 전세계의 바둑계는 그야말로 초토화 된 것이다. 나였다면 직업으로서의 프로기사는 당장 은퇴하고 그저 취미로 바둑을 즐기기만 할 것 같다. 그것은 모욕이었다. 그리고 알파고는 그 이후 몇번 더 업그레이드를 하더니 적수가 될만한 인간 기사가 나타나지 않으니 은퇴해버렸다. 그렇게 알파고를 은퇴시킨 구글은 이후 인공지능으로 단밸질 구조 분석에 뛰어드는데, 하나의 세계를 엉망으로 초토화를 만들어버리고는 홀연 떠나버린 것이다. 남겨진 바둑계는 그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려 발버둥치고 있으나 더이상 예전과 같지는 않다.
로봇업계, AI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책 본문의 내용 중 반박하고 싶은 내용도 있으나 큰 골자는 같다. 우리는 로봇과 AI가,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리라 믿는다. 이는 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세계이다. 우리시대 SF작품 중 걸작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스타트렉'이고 하나는 '스타워즈'다. 두가지는 항상 비교되기 마련인데 '스타트렉'은 유토피아 세계관이다. 스타트렉 세계관에서는 Replicator(물질재조합장치)에 의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로인해 빈부가 의미없어지고, 인간들은 본인이 진실로 하고싶은 일에 종사한다(금전대가를 위한 노동이 아님). '스타워즈'의 경우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제국군이 압도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재를 펼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스타트렉 세계관을 원하지만 현실은 스타워즈 세계관으로 가고있다. 어차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국가, 기업들이 모든 재화를 독점하게 될 것이고 일반 사람들은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제라면 AI와 로봇이 대부분의 노동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떤 노동을 해야하냐는 것이다. 기업과 국가들이 시혜적으로 '이 부분은 로봇과 AI를 투입하지 말고 인간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죠. 저사람들도 먹고 살아야할 것 아닙니까'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게 해줄것인지.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렇게 벌게 된 최소한의 재화도 어차피 국가나 기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먹고 살려면 서비스든 물건이든 구입해야할테니).
인간들은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본인들이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단꿈에 젖어 마치 '미래의 부자'자리를 약속받은 것처럼 자본가들에게 의식을 의탁하여서 그들의 편을 든다. 노조는 해악이고, 노동 유연화가 이루어져야하고, AI와 로봇이 미래를 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은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꽤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하지만 기술은 우리의 그런 낙관과 아무 상관없이 움직인다.
업계인으로서 참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세상의 기술발전에 대해 희망적인 사람이야말로 당장 읽어봐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