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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 천병희 옮김단국대학교출판부 ( 출판일 : 2004-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8-15
페이지수 : 569 상태 : 승인
20대 때 읽은 <오뒷세이아>를 다시 잡은 건 영화 때문이다. 최근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딧세이아>를 무척 재미있게 봤다. 거의 30년 전에 읽었어도 관련된 다른 문헌들에서 간혹이지만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텍스트기에 대략적인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의 다른 부분들을 확실하게 확인하게 싶고 잊어버린 부분들을 상기시키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어느새 나이만큼 쌓인, 읽고 싶은 어떤 책의 두께도 내용도 형식도 부담스럽지 않게 해준 그간의 독서 이력이 고맙다. 아무래도 이번 독서 일지는 영화와 원작이 다른 부분을 정리하는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 달라진 부분이 영화 <오딧세이야>의 주제가 되는 동시에 고전을 현대적인 의미로 새롭게 재해석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먼저 영화와 원작이 가장 다른 부분은 주제에 대한 접근이다. 원작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딧세우스의 귀환의 여정을 통해 그리스 비극처럼 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거기에는 고통스럽지만 탁월함과 고귀함으로 신들의 편애를 받는 사람이 있다. 자초하지는 않았지만 해결될 결말이 미리 정해져 있다. 예언이 있지만 악은 자초된 것이라는 권선징악이 다소 모순적으로 존재하는, 시대를 감안하며 읽어야 할 고전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관점을 완전히 뒤튼다. 영화는 오딧세우스의 귀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인과응보적인 주인공의 책임으로 돌린다. 선물로 위장한 트로이 목마가 신의를 저버린 것이기에 오딧세우스는 벌을 받는 것이다.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오딧세우스의 눈에 전쟁은 고통과 약자들의 죽음으로 표현된다. 원작이 개인의 능력과 복수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개인의 서사에서 전쟁의 비극으로 관점을 확대한다. 목마 속에 숨었던 오딧세우스와 그리스 군들이 트로이 성문을 열고 아군을 맞아들이자 살육이 시작된다. 외마디 비명으로 점철된 살육의 현장을 영화는 소리로 극대화시켜 표현한다. 노래의 형식으로 전해진 서사시 원작의 형식을 쓰되 다른 방식으로 차용해 주제의 변환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전쟁이 멈추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전쟁의 고통이 약자들에게 얼마난 큰 고통을 주는지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해석이자 원작의 변화이다. 특히 귀족층 안티노오스를 대신해 출전하고 오딧세우스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계략에 희생되는 하층민 시논의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두번째로 영화와 원작의 다른 점은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의 성격과 관계이다. 원작 속 페넬로페는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수동적인 여인으로 나온다. 옷감을 짜고 다시 푸는 지혜를 발휘하지만 원작에서 페넬로페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대체로 울다 잠드는 몇 번의 언급이 있을 뿐인데, 영화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당찬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자신이 능력과 정당성이 있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원작 속 숨죽인 페넬로페를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이는 영화에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억압 받고, 그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끼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딧세우스 아들 텔레마코스의 전반적인 성격은 비슷하지만 관련된 에피소드를 좀 변화시켰다. 원작에서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 몰래 떠나지 않는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보겠다며 공개적으로 원로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아 스파르타로 떠난다. 영화에는 제 나라로 돌아오던 텔레마코스가 오딧세우스의 도움을 받아 안티노오스가 보낸 암살자들의 살해 현장에서 빠져 나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원작에는 그러한 내용이 아예 없다. 원작에서 스파르타에서 돌아온 텔레마코스가 만난 나그네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밝히자 놀라며 오딧세우스의 주도 하에 함께 구혼자들은 물리칠 계획을 짠다.
원작에서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적은데다 큰 의미가 없는 반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대화와 갈등 부분이 부각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한다. 모자 관계로 서로 사랑하면서도 성과 지위에 관한 부분이 야기하는 갈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아버지와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은 비슷하게 애틋하지만 왕자와 왕비의 지위로 얽히며 두 사람의 관계는 좀더 복잡해진다. 고대나 지금이나 부모와 자식, 여자와 남자 갈등이 부분적인 변화가 있을 지라도 여전히 재현되는 양상이다. 이 갈등에 권력 구도가 더해지면 어떤 결말이 펼쳐질지 자못 흥미로워지기도 한다. 확실한 건 남자의 인식보다 여자의 인식과 모성의 성격이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영화와 원작이 다른 부분은 결말이다. 원작은 구혼자들을 물리친 오딧세우스가 절망하며 낙향한 아버지를 찾아가고, 구혼자들의 가족이 복수를 위해 오딧세우스에게 몰려오지만 아테나의 중재로 평화를 되찾는다. 영화는 오딧세우스가 자신과 자기 세대의 죄를 텔레마코스에게 남기지 않기 위해 홀로 싸우고 왕위를 이양하고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상당히 책임감이 두드러진 결말로 감독이 지금 세대와 전쟁을 야기하는 권력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 않을까 싶다.
그외에 여러 가지 다른 부분들이 있다. 영화는 키르케가 강간을 당할까 두려워 강하게 방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영화에서 안티노오스는 제일 마지막에 죽지만 원작에서는 가장 먼저 죽는다. 영화에는 여신 아테네가 오딧세우스를 따라다니며 그저 몇 마디 말을 붙이는 역할을 하지만 원작에는 시종일관 따라다니며 사람으로 변신하며 오딧세우스를 돕는다. 원작에 있는 몇 가지 모험이 영화에는 없다. 너무 방대해져 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차이점들이 있지만 다 언급하기에는 미미하다.
한 가지 현실에서 영화에서 논란이 되며 회자되는 부분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 역할을 흑인이 맡은 것이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여성이 받는 차별을 부각시킨다. 페미니즘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좀더 포괄적으로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인다. 전쟁이 일어나면 약자들이 더욱 고통 받는다. 헬레네를 흑인 여성이 맡은 것은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남편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거의 물건 취급하는 것은 복수심의 일면도 있지만 약자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은 수많은 명분을 갖다 붙이지만 궁극적으로 약자에 대한 강자의 공격성과 폭력성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여성과 인종 논란을 부각시키며 이러한 마음들이 결국 전쟁을 야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오뒷세이아>는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20대 때에 읽었을 때는 모험담에 집중하고 오딧세우스의 매력에 빠졌었다. 정확히 말하면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다들 못도와줘서 안달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오딧세우스보다 페넬로페와 다른 주변 인물과 환경에 더 집중하게 된다. 거인 퀴퀼롭스의 저주로 병사를 모두 잃는 오딧세이는 자신을 이름 대신 '무인(아무 것도 아닌 자)'로 소개한다. 거대한 힘 앞에서 한 사람은 그런 존재로 취급 받는다. 힘이란 권력이란 항상 더 큰 존재를 상정하기 마련이기에 누구나 그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오딧세우스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두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 힘껏 살았을 것이다. 그 힘으로 나 역시 살고 있다. 오딧세우스만큼의 모험은 아니지만 고군분투하기도 했던 내 삶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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