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 The origin of species : 정유정 장편소설 : 큰글자책
정유정 지음은행나무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8-10
페이지수 : 479
상태 : 승인
정유정의 소설은 7,8년 전에 읽은 <7년의 밤> 하나이다. 몰입감이 대단했던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이후 개봉한 (평론도 대중도 외면했던) 영화까지 나는 만족스럽게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종의 기원> 역시 몰입감이 대단했다. 읽는 내내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상위 버전이라는 '포식자' 주인공의 행적을 긴장하며 지켜봤다.
주인공 유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작품은 주인공에 대한 적대감과 동시에 하고싶지 않는 저항이 드는 이질적인 공감을 일으킨다. 자신을 생각과 느낌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솔직한 동시에, 자신이 늘 솔직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고백은 그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애정 대신 본성의 발현을 억제하는 통제만 받아왔다는 점에서는 동정을 사지만 다툼 끝에 엄마를 살인했다는 지점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엄마를 배후 조종한 이모에 대한 분노는 이해되지만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 이복 형 해진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위험해지면 죽이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의 이면에 쓰여진 서사는 무시무시한 살인자를 이해할 수도 맏아들일 수도 없는 양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유진에게 정말 감정이 없었을까. 나는 그렇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가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는 걸 받아들이더라도 후천적으로 형성될 여지는 있었다고 생각된다. 작가 역시 문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유진의 입장과 유진을 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다양하게 드러낸다. 유진은 분명 범죄자이고 격리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진이 형 유민이나 해진에게 느끼는 유대감 비슷한 감정은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유진의 엄마는 유진을 사랑한 걸까, 통제한 걸까. 유진이 제 습성을 스스로 잠재울 방법을 키울 수는 없었을까. 유민이 유진에게 한 행동은 유진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 끊임없이 생성된다.
특히 유진 엄마의 모습은 엄마인 나와 겹쳐져 끊임없는 의문을 야기한다. 양육 방식이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모자 관계이다. 유진 엄마가 철저한 통제 대신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면? 그녀의 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누구도 저런 상황에서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어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두려움 때문에 타인에 대한 통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내 두려움을 옳다는 이유로 포장하고 규범이나 질서로 만들어 강요하지는 않는지 짚어볼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엄마는 과연 자식을 사랑해야만 하는지, 모성은 환상이 아닐까, 하는 모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법은 질서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유진처럼 이를 순응할 수 없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만약 그들의 성향이 타고난 것이라면 어떻게 단죄해야 하는가? 이 질문도 답을 찾기는 어렵다. 세상의 법은 심신 미약이라는 명목으로 일말의 여지를 두고 있지만 늘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타고난 취약성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유진과 같은 존재는 두려운 대상이다. 제가 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저 느끼기 위해서 살인을 한다. 그가 포식자라면 이모는 포식자를 길들이는 사육사라고 할 수 있다. 길들이지 못한 사육사는 위기에 처한다. 싸울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은 생존을 위한 사투처럼 읽힌다. 사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존을 이런 치열한 사투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가 서술한 적응과 변화에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분위기는 희박했다. 다윈의 자연 선택에는 환경이 미치는 힘과 적응하는 개체의 힘의 상호 작용이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유진은 환경이 허용하기도 한 존재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피할 수 있는 사공간이 마련되는 곳인 것이다. 유진처럼 인간에게 내재된 공격성이 최대로 발현된 인간이 있을 수는 있다. 사회화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남는 것은 개인의 탓일까, 환경의 탓일까. 휴,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