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넘어서 : 우상의 황혼/이 사람을 보라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강두식, 곽복록 [공]옮김동서문화사
( 출판일 : 2017-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8-08
페이지수 : 427
상태 : 승인
전에 읽은 니체 책의 출판사인 아카넷의 <우상의 황혼>이 관내 도서관에 없다. 희망도서나 책값반환제로 신청하고 싶어도 출판년도에서 걸린다. 할 수 없이 다른 출판사 책을 고르다보니 전에 읽은 <선악의 저편>과 니체의 자전적 에세이인 <이 사람을 보라>가 합본된 책을 대출할 수밖에 없었다. (니체를 읽기 위한 계획이 조금 어그러졌지만, 이런 궤도 수정도 이제는 즐긴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이 책은 <선악을 넘어서>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아카넷의 <선악의 저편>을 재대출해 부분부분 비교해 보면서 읽으니 또 나름 재미있다.
동서문화사의 <선악을 넘어서>는 강두식이 번역했는데 다른 책을 읽은 것 같을 정도로 아카넷과 많이 달랐다. 아카넷의 번역가 박찬국의 번역보다 더 생생하고 신랄하게 니체의 어조가 느껴졌다. 비교해 읽으니 박찬국의 번역이 다소 얌전을 빼고 어수선한 문장을 좀 정리한 것이었다. 한번 읽고 다시 읽은 것이라 그런지 강두식의 번역이 훨씬 재미있고 잘 읽혔다. 박찬국의 번역이 아마도 거름망에 한번 거른 느낌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우상의 황혼>은 모두까기 니체가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여러 철학자와 작가, 예술가들을 대체로 비판하고 최소한 평가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간의 철학이 얼마나 사람들을 망쳤는지 <선악...>이나 <도덕의 계보>보다는 다소 수위를 낮춘 어조로 성토한다. 부처를 생리학자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좀 터지고 말았다. 부처가 안좋다고 여기는 부분을 잘라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한다면서 이렇게 표현한다. 니체는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지칭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여러 내용들이 자신을 탐구하고 여러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나오는 것이기에 그런 듯하다. 사실 나도 그의 철학이 철학이라기보다는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보면 자아 찾기로 생각될 정도로 가식과 허울을 벗으라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상의 황혼>까지 읽고 보니 <선악...>과 <도덕...>의 내용이 마구 뒤섞인다. 세 책이 변별성은 있지만 말하는 의도와 흐름, 성토하는 방식이 비슷해 그런 것 같다. 니체의 다른 책을 보기 전에 조금 정리해야 할 듯하다. 니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윤곽이 잡힌다. 왜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는지 확실하게 알겠다. 책에 망치가 직접 언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철학과 종교에 대해 취하는 태도 때문이다. 니체는 정말 가차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미래에나 통할 거라 짐작하면서도 신랄하게 당대의 사조를 비판한다. 사람들을 일깨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의 자전적인 글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등 소제목들이 대놓고 자기애적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도덕과 양심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깨우치고 자신의 본능을 찾아서 살아가라고 말하는 니체가 겸손한 표현을 사용했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의 주장과 일관되는 자기 평가라고 보인다. 다만 니체 역시 자신의 주장들이 자신이 비판하는 여러 철학과 종교가 눈치채지 못하고 자행하는 자기 방어의 일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니체의 강한 어조와 나약함에 대한 경멸은 이 철학자의 상당한 자기 방어로 읽힌다.
아니, 어쩌면 그도 이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수도 있다. 제목인 '이 사람을 보라'는 말은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도덕을 말한다는 것은 거울 앞에 서서 '이 사람을 보라'면서 우스꽝스러운 연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 내용에서 나온다. 자전적 에세이에 이 말을 제목으로 가져온 것은 자신 역시 그런 우스꽝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싶다. 니체는 스스로를 어릿광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전적인 글이기에 붙인 제목이겠지만 자신에 대한 희화화도 가능했던 유연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니체는 자신의 삶을 원하는 것도 목적도 없이 그저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책 뒤 실린 연보에 나온 니체의 삶을 살피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니체가 어떻게 느꼈다라는 말은 없지만 고단하고 힘든 면이 있는 것이 여느 삶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의 강한 어조는 제 맘대로 통제되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저항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니체는 자신이 하나의 새로운 관념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수록된 몇 개의 잠언에는 결국 자신을 잊으라는 내용이 포함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관념을 깨는 니체의 주장의 궁극은 그렇게 완성될 것이다. <우상의 황혼>과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에 대한 강한 인상을 상당히 누그러트린다. 그는 열심히 제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