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산 총각
이수지 지음비룡소
( 출판일 : 2021-05-14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7-31
페이지수 : 28
상태 : 승인
병풍처럼 펼쳐지는 물성이 독특한 그림책이다. 옛이야기를 새롭게 작업한 것이기에 이런 형식을 취했나 싶었다. 한번더 그림을 유심히 살피며 보니 왜 이런 형식을 취했나 대충 감이 잡힌다. 그림책 내용은 제 그늘이라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욕심쟁이 부자로부터 그늘을 사들이는 총각의 이야기이다. 총각은 그늘이 부자의 집으로 들어가자 제 집처럼 드나든다. 이에 화가 난 부자가 결국 집을 버리고 떠난다.
그늘은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빛과 물체의 거리에 따라 줄었다 늘었다 한다. 병풍 모양 그림책이 접힌 부분을 펼치며 쭉쭉 늘어나다 다시 작게 접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런 듯하다. 내가 어떤 마음씨를 보이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부자가 그리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꾀가 많은 총각으로부터 긍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준 만큼 되돌아온다는 말은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에도 적용되기 마련이다.
이 그림책은 면지에서부터 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면지에서부터 펼쳐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면지에 그려진 높은 산 꼭대기에서 총각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총각은 이미 마을 부자의 횡포를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길다란 제 그늘을 꼬리처럼 달고 댕기머리를 휘날리며 마을 느타나무 그늘로 직진한다. 부자의 욕심을 이용해 자멸이 길을 걷도록 산꼭대기에 설계를 하고 내려왔을 것이다. 그는 산신령처럼 사또처럼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구원자이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이 서사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쁜 사람을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불문율이 지켜지면 되는 것이다. 산과 그늘에 처진 빗금이 자연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 그저 자연이라는 생각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그 자연을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사유화하며 혼쭐이 난다. 그림책에 쓰인 글자에 색이 들어있다. 해설은 검정이지만 부자의 말은 보라색으로, 총각과 마을 사람들의 말은 초록색으로 쓰여 있다. 그림에 나무가 초록색으로 그늘이 보라색으로 그려진 것과 연결된다.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을 확연히 구분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앞에서 본 이수지의 다른 그림책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간결한 그림체와 몇 가지 안되는 단조로운 색쓰임은 비슷하다. 그런데 한없이 늘어지는 그늘이 경계없이 이어진다. 현실감을 상실했나싶게 도대체 이어질 수 없는 길이까지 늘어난다. 그러고보니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그 환상성은 여전하다. 작가의 개성을 이렇게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