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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인이었을 때: 마종기 시집

마종기 지음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25-10-10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7-24
페이지수 : 152 상태 : 승인
두 권째 읽는 마종기 시집이다. 전에 읽은 시집이 시들은 뭔가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특히 슬픔을 말히지 못하는 억눌림이 있었다. 이번 시집의 시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미주알 고주알 다 말하고 있었다. 시인이 80이 넘어 쓴 시들이란다. 마치 넋두리, 하소연, 푸념처럼 느껴지는 시들이었지만, 전에 만난 시들보다 훨씬 좋았다. 전작과 달리 작가가 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고통과 두려움, 자기 혐오와 연민 사이에서 느껴지는 무수한 감정들의 엉킴, 그 답답함에서 놓여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이 터진 사람의 읊조림이 참 듣기 좋았다.
잀상의 느낌, 여동생의 죽음, 지난 고통에 대한 회상 등 시인의 정서를 옆에서 수다 떠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적어내려간 시가 많았다. 그 시들은 무겁지 않았다. 삶의 끄트머리에 서게 된 노익장의 부드럽지만 단단한 혜안과 만난 것 같았다. 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겹쳐졌다. 시인의 나이에 이르게 되면 나 역시 무겁던 삶에 대해 이처럼 천진한 관조를 하게 될 수 있을까. 시인의 마음은 아이처럼 순수했다.
시집의 말미에는 큰 고통을 받았음에도 말할 수 없었던 지난 삶에 대한 시인의 회고가 적혀 있었다. 시인은 독재 정권 시절 한일 수교 반대 운동에 얽혀 고초를 당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함구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그후 제 마음대로 고국의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어쩌다 한번 귀국을 해서도 마음을 졸인다. 고생 끝에 미국에서 인정 받는 의사가 되었지만 늘 불안한 삶을 살았다.
여든이 넘은 시인은 조금의 울컥이 담아 지난 삶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그 고백은 시에 담겼던 그의 억압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자유를 느끼지 못했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시인은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며 권력에 대한 증오로 남은 제 삶을 망치지 않는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두려움에서 놓아나며 자신의 말을 되찾는다. 마치 막 말을 배운 아이처럼 수다스럽게 제 이야기를 떠든다. 사물에 제 마음을 투영하며 회피하지 않고 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떻다고 이야기한다. 그 마음이 담긴 시들이 참 아름답다.
아쉬운 점은 시인은 여전히 아내와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얼핏 비치는 아내에 대핸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어찌할 수 없는 부분으로 남게 되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 같다. 시인의 시는 앞으로 그 문제에 어떻게 다가갈까. 마종기의 시를 꼭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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