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대하여: 개소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탐욕과 혼돈의 아수라
해리 프랭크퍼트 지음 ; 유강은 옮김생각의힘
( 출판일 : 2025-11-20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7-19
페이지수 : 154
상태 : 승인
두 달 전에 이 책의 저자인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를 즐겁게 읽었다. '개소리'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하는 저자의 방식이 다소 도발적이기에 그 도발에 화답한듯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진실에 대하여>를 읽어보았다. 전작의 개념 정리가 독특하고 조금 복잡했기에 산만해지려는 주의를 잡아가며 집중해 읽어야 했다. '개소리'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은닉과 은폐의 술수를 쓰는 까다로운 글이이었다. 대놓고 욕을 하지 못하고 돌려까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진실'의 성격을 반영하듯 직설적이고 명쾌했다. 정리하며 읽어야 했기에, 전작을 읽는 동안 났던 짜증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개소리가 난무하는 사회를 걱정하며 '개소리'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의 요지는 개소리는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며 지금 그러한 개소리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진실'이 왜 중요한지를 거짓이 미치는 악영향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진실은 우리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재'와 연결시킨다. 거짓은 실재와 아무런 상관없는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공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거짓은 상처를 남긴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의 문제는 친밀감을 차단시켜 사회로의 연결에도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역설한다.
사회에 난무하는 개소리에 대한 저자의 우려의 근본에는 고립되는 개인에 대한 성찰이 있었다. 그는 진실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에서 찾는다. 저자는 진실을 개소리와 전혀 연관시키지 않고 논지를 전개한다. 모호한 개소리가 이토록 중요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진실은 그 자체로 중요함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특별한 것이 없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의아한 것은 저자가 포스트모더니즘을 개소리 난사의 주범으로 모는 듯한 태도였다. 전작도 그렇고 이 책 역시 저자가 '진정성'으로 표현한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 대한 거부감으로 읽히는 지점들이 있었다. 나는 '진실이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주제는 진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진실이 다르다는 개인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진실'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조작될 수 있고, 조작된 진실을 의심없이 혹은 비판하더라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의 혼란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진실은 어딘가에 존재하나 우리는 부분적인 사실만을 인식하며 기뻐하거나 분노하고 상처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없다기보다는 우리는 파편화된 상태도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 내용이나 저자의 생각,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문을 '해제'가 풀어줬다.
이 책의 해제를 쓴 사람은 서울대 철학과 교수 한성일이다. 전에 2권쯤 읽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논지도 문장도 무척 훌륭한 글이었다는 긍정적인 인상이 남는 철학자였다. 그 역시 나처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저자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의 태도는 사실 상당히 공격적이기 때문에 그가 개소리 자체보다 그러한 분위기를 이끄는 저 위에 무언가(포스트모더니즘으로 추정되는)를 적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진실을 위협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려는 생각을 제 이익을 위해 잘못 이용하는 사람들이지 사상 자체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성일 역시 주저없이 이러한 저자의 태도에 우려와 실망을 표한다. 그러면서 스피노자의 사상을 끌어와 저자의 논지를 보충하며 진실의 중요성에서 의의를 찾는다. 나는 저자의 의도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폄하보다는 진실을 도외시하는 개소리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는다.
엊그제 읽은 니체의 책에서도 '진실은 없다'란 명제가 나와 이 책을 좀더 흥미롭게 읽었다. 니체는 이 명제를 주창하는 철학자들의 욕구를 진실에 대한 추구이기에 진실은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 명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진실은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약자들이 도피하며 만든 훌륭한 위선으로 위장시킨 것이지 않을까싶다. 굴하지 않고 꾸미지 않은 제 안의 본성 그대로 사는 것을 그는 진실이라 생각한 듯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는 각자에게 주어진 문제일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이라 생각하고 말했을 것이다. 분노한다는 점에서 프랭크퍼트는 니체와 비슷하다. 니체 살아있었다면 역시 지금과 같은 개소리 난무 현상에 대해 폭격을 퍼부었을 것 같다. 나 역시 진실을 추구한다. 그건 이유를 설명할 필요없는 본능처럼 느껴진다. 이들처럼 분노하기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쉬운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진실을 쫓으며 개소리에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