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김주완 지음피플파워
( 출판일 : 2023-01-01 )
작성자 :
이○묵
작성일 : 2025-04-11
페이지수 : 359
상태 : 승인
금강경에는 무주상보시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한문 뜻을 풀자면 상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 내가 주었으니 더 크게 돌려받아야 한다는 부담가는 생색내기 베품이 아닌, 주는 나를 잊어버린 보시라는 것이다. 그냥 마땅히 주어야 했기에 주었고, 그에 따라 응당 갚을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고 사양할 줄 아는 삶. 불자라 해도 실천하기 참 어려운 경계이다. 다큐의 클립을 보았을 때도 아 이사람 끌린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파스타 집에서 꼽혀있던 것을 처음 발견하여 한 두 페이지 눈에 닿는대로 본 뒤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반납했다 타관에서 상호대차로 불렀다가 오송본관에 간김에 빌렸다가 하여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던 것을 수개월 차에 이 시국이 되어 읽게 되었다.
마은혁 재판관을 헌재 판결에도 불복하여 어거지로 탄핵 결정에 임박해 임용 시키지 않는 개꼼수를 부리던 쿠데타 내란 잔당들의 권모술수와. 4월이 넘도록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아 설마 5대 3? 4:4 ? 기각의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찰나, 이 책 중간에 등장한 문형배 판사의 청문회 대목에서 큰 안심감을 얻었다. 문재인의 인사 대실패(윤씨 파면자)를 단죄하기 위한 마지막 해결사, 다크나이트가 헌재에 심어져 있는 줄이야.
"... 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자기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산도 딱 재판관으로 살며 부정축재를 하지 않고 성실히 번 돈 정도만 신고되어 있는 참 법관의 자세는 내가 누구 덕에 컸는가를 기억하는 초심에서 온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걸출한 인물에게 덕을 베푼 김장하 선생은 누구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를 청문회 하던 자 중 하나가 장제원이라니 웃기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가로 번 돈이기에 내가 써서는 안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뜻있게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셨다. '자신이 못 배운 고통을 기억하여, 이 경남 땅에 못 배우는 고통을 다 없애지는 못 하더라도 내가 아는 한은 최대한 덜어내려고 평생을 벌어온 기금을 장학사업과 학교재단에 바친 뒤 그 사립학교 법인을 국가에 헌납하기의 과정까지. 재테크와 잇속을 아는 사람의 눈에서는 헉스러운 기염을 토하지 않을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이 드셨다고 신기술에 무지하지 않고 스승을 구해서 배움을 계속하신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상아탑에 들어가서 배움을 놓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배울 의지가 없는 이에게 강의란 소귀에 경읽기에 가깝다.
그리고 밖에다 퍼주기 때문에 가족이 불쾌할 만도 한데, 그런 입막음을 사전에 실행키 위해 가족들에게도 넉넉히 나누어 주었고,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학비 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도 지원해 주었다 하니 이런 장학금이 어딨겟는가. 심지어 내가 이렇게 너를 도왔으니 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이 되라고 압박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장학생들이 모여서 계라도 할라 치면 너희들 중에 안 풀린 친구들이 부끄럽고 서글프지 않겠는가 하여 해산해 버렸다. 그냥 보통의 시민으로 자라나 티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셨고, 운동권에서 핍박받은 수혜 학생에게는 안타까운 마음 또한 잊지 않으셨다.
기자 출신의 저자도 나이가 들어, 책 편집은 좀 요즘 팔리는 스타일이 아니기는 하였지만(구구절절한 기록이 좀 많다) 김장하 선생에 대한 꾸준하고 집요한 덕심으로 김장하 선생의 발자취를 쫓아간다. 그의 생애 이력부터, 사천의 남성당 한약방, 진주로의 이전 남성학숙의 설립. 학교재단을 가꾸고 헌납한 일, 김장하 장학생 등등. 자기 선친이 조강지처를 잃은 뒤로 기운이 없어서 진주에 살던 시절 신문에 공고를 내어 두 번째 인지 세번째 부인인가를 중매서 준 일화에서는 아 큰그릇은 저렇게 옛 시절에도 오픈마인드구나 하고 놀랐다. 그러면서 인용하는 구절은 한서 어느 대목이었는데, '못된 아내가 그래도 효자보다 낫다'라니...
경남 쪽 운동권 사회 원로들, 예술가 중에 그의 후원금을 먹지 않은 이가 별로 없었는데 이런 뒤탈없는 돈이라니...
보면서 나도 사업을 하면 좀 이렇게 배포 크게 베풀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단돈 백만원만 내도 생색을 내는 수전노 타입이라(콩나물 국밥 4900원짜리 한 그릇 사준 것으로 개판치며 생색내던 놈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어찌 그의 그릇을 닮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망양지탄 또한 따른다. 이런 게 불교에서 말하는 장자 아니겠는가.
아무튼 대한민국은 그 분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될 것까지 알고 베푼 게 아니어서 더욱 기적이다. 유위가 아닌 무위의 삶에 근접한게 아닌가 싶었다. 그와 그가 맺은 결실들 덕분에 나랏일이 바로 서게 되었다. 남은 것은 시민의 몫이리라. 한가지 특이점은 불자가 아닐까 하고 책을 살펴봐도 불자였다 하는 부분은 딱히 한 단락(323-330pp)밖에 없어서 놀랐다. 유학을 모태로 하고, 남명 선생이라는 분과 진주정신이 그의 덕행의 근본이며 백정들의 신분투쟁인 형평운동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힘을 쓰셨던가 싶기는 한데... 뭐 어떤가 무주상 보시를 불자만 하라는 법이 있겠는가.
사족 : 진주신문가을문예 소설 3회 당선자는 정연승 작가로서, 청주 사람이라 한다. 진주 김장하 선생과 청주의 인연을 찾자면 또 이렇게 없지 않더라. 이 글을 공개처리해 놓아도 수많은 어린이 독후감에 파묻혀 찾아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내란 옹호, 오송참사의 주범 김영환 도지사와 이범석 시장을 좋다고 뽑고 아직도 반성이 안되는 충북도민 청주시민은 반성하는 차원에서 꼭 일독을 권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