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지음은행나무
( 출판일 : 2024-08-13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9-16
페이지수 : 248
상태 : 승인
*제목: 2024 대한민국
올해 초 문화일보에서 '소설, 한국을 말하다' 기획 연재를 한 적이 있다. 장강명, 구병모, 김멜라, 정보라 등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20여명이 짧은 단편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들 각각 현재 한국의 키워드를 한 개 씩 맡았다.
그 연재본이 이렇게 단행본으로 발간되어 반갑다. 특히 후반부의 이야기는 연재 시 읽지 못했던 부분이라 더 즐거웠다. 키워드는 순서대로 AI, 콘텐츠 과잉, 거지방, 사교육, 번아웃, 가족, 현대적 삶과 예술, 고물가, 타투, 자연인, 오픈런, 팬심, 새벽 배송, 다문화 가족, 반려동물, 섹스리스, 노동, 중독, 돈, 식단이다.
각 이야기가 단행본 기준 4~5장 수준이라서 짧게 짧게 술술 넘어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조경란 작가가 '가족'을 키워드로 지은 '금요일'의 한 대목을 발췌로 남긴다.
"아버지, 웬 한숨을 그렇게."
한숨이 아니라 큰 숨이라고 송 씨는 말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가족이 다 모인 게 안심이 돼서, 은행나무에 누가 박아놓은 못을 다 뽑아서. 송씨는 점심시간에 그 일을 했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상가 건물 앞 오래된 은행나무에 못을 박아놓기 시작했다. 분풀이인지 분노인지 잘 빠지지도 않는 굵고 긴 나사못들을. 어젯밤에는 은행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꿈을 꾸었다. 장도리로 애써 수십 개의 못을 뺴내면서 송 씨는 누군가의 그 분노가 다른 데로, 사람에게로 향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송 씨는 못을 뽑는 일, 그것도 사람의 일이라면 고작 그 정도밖에는 할 수 없게 될지 몰랐다.
금요일 저녁, 함께 밥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빠짐없이 모여 앉은 가족들이 보였다. 송 씨는 다시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했고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기까지 무언가를 위해 짧게 기도했다.(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