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Season 2 . 10
윤태호 지음더오리진:
( 출판일 : 2019-10-14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9-08
페이지수 : 249
상태 : 승인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9권으로 구성된 시즌 1을 다 읽고 난 후에 시즌 2는 독서 마라톤이 끝난 후에 여유 있게 읽으려 했다. 원래는 읽은 김에 시즌 2도 읽고 독서 마라톤을 위해 감상문을 쓰려 했다. 하지만 감상문을 계속 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어서 한 호흡 쉬고 독서 마라톤이 끝난 후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위해 계획을 변경해 도서관에서 빌린 시즌 2의 책들을 바로 반납하려고 했다. 이번에 읽으면서 원작이 시즌 1, 2로 구성된 걸 알게 돼서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시즌 2 끝이 조금 급하게 끝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는 평이 나중에 읽고자 하는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미 밤이 늦어 반납을 하기 위해 하룻밤을 기다려야 했다. 도서관에 당장 달려가 무인 반납기를 이용하면 됐지만 그렇게 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냥 자고 일어 나 다음 날 반납하려 했다. 하지만 밤은 생각보다 길고 할 건 없고 심심하기도 해서 그냥 뭐 천천히 한 권 읽어 볼까 하는 마음에 시즌 2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0권을 집어 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이럴 거면 그냥 독서 마라톤 감상문을 쓰자 해서 이렇게 꾸역꾸역 쓰고 있다.
미생을 처음 읽을 땐 첫 직장인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듯이 그만 둔 제약 회사에서의 짧았던 생활이 많이 생각났다. 시즌 1이 끝나면서 장그래는 2년 계약이 만료되고 결국 정직원으로 전환이 되지 않았다. 고졸에 이렇다 할 스펙도 없는 그것도 낙하산을 정직원으로 전환해줄 만큼 원 인터내셔널이란 회사가 만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바둑을 해서 그런 건지 천부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계약직으로 있으면서 일도 잘 배우고 성실하고 중간중간 번뜩이는 기재로 두각을 나타낸 적도 있었지만 그것 만으론 견고한 대기업의 시스템을 뚫을 수 없었다.
결국 계약 해지를 통보 받고 원 인터에서의 일을 마무리 했다. 그와 동시에 오 차장은 같이 일했던 선배의 제안으로 김부련 부장과 함께 나가 회사를 차린다. '좆소' 혹은 '좋소'로 조롱 받는 중소기업을 차렸다. 원 인터에 비하면 구멍 가게 수준이다. 인원이 부족해 2주 정도 쉬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장그래를 사원으로 뽑는다. 더불어 오 차장이 나가고 길을 잃은 듯한 김동식 대리도 함께 한다.
그 과정이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순간 무섭기도 했다. 오 차장의 선배의 제안으로 오 차장과 김부련 부장은 회사를 차렸으니까 그렇다 치고 장그래는 당장은 갈 곳도 없고 대기업에서 운 좋게 2년 간 계약직으로 일 한 게 전부이기 때문에 불러 주면 고마운 상황이었는데 일단은 나름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 김동식 대리가 온 게 의외는 아니었고(예상은 했다.) 나의 현실을 보는 거 같아 다가오는 의미가 조금 남달랐다.
내용 중에 대기업 대리로 재직하던 김동식 대리가 오 차장과 김부련 부장이 차린 회사에 오면서 연봉 협상을 하는 과정이 있는데 어제의 동지였지만 연봉 협상이라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는 서로 한 치의 물러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불과 얼마 전 까지 같이 한 솥 밥을 먹었던 동료인데 하는 싸구려 낭만은 저기 쓰레기 통 어딘 가에 그냥 처 박혀 버렸다. 그럼에도 오 차장과 김부련 부장은 김동식 대리의 현실을 위해 줬고 김동식 대리 역시 중소기업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결국 연봉 협상을 마무리하고 같이 일하기로 했다.
해서 김부련 부장은 사장이 되고 오 차장은 부장이 되고 오 차장의 선배는 전무가 되고 김동식 대리는 과장이 된 그런 중소기업에 장그래는 사원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 원 인터에서 직속 선후배 관계였던 김동식 대리와 장그래가 후에 술 한잔을 하면서 월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대사가 너무 무서웠다. '월급 날... 월급을 줄 수 있다는 건 회사의 엄청나고 엄청난 성과야.'라는 김동식 대리의 대사였다.
이 대사가 특히 무서웠던 이유는 나 역시 지금 직장을 바꾸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나 김동식 대리와 똑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지점이 있다. 바로 대기업은 아니지만 10년 간 일을 한 3천 명이 넘는 회사를 정리하고 100여 명 안 쪽의 작은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생 10권을 읽기 전에 이미 충분히 생각을 한 후에 어느 정도 옮길 결정을 하기 직전이었는데 미생 10권을 읽으며 특히 앞에 이야기한 대사 부분을 읽으며 덜컥 겁이 났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근 30여 년 간 시스템을 갖춰 온 3천 명이 넘는 규모의 회사에서는 월급이 나오는 걸 두려워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일을 줄여 월급이 적어 진 적은 있어도 10년 간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단 한 번도 월급을 못 준 적도 없고 밀려 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직 하고자 하는 곳은 지금 회사 규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곳이다. 이리저리 재보고 따져 보고 생각해 보고 아내와 충분히 논의도 한 끝에 결정을 했지만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과연 옮겨 가는 곳은 월급을 매달 언제나 항상 제대로 줄 수 있을까? 당장은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 3년 뒤는 어떨까? 5년 뒤는? 10년 뒤엔 과연 회사가 남아 있긴 있을까? 결정을 번복해야 되나 하는 나름 심각한 고민을 또 밤새했다. 만화책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여하튼 만화책 한 권 읽고 일생일대의 결정을 그냥 밀고 나갈까 번복할까를 고민했다.
결론은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만화 따위에서 하는 말을 무시하는 결정이 아니었다. 불안하기도 한데 그렇다면 인원이 조금 있고 규모도 있는 지금 회사는 과연 10년 뒤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것보다 지금 나이를 생각했을 때 10년 뒤면 그게 어디든 직원으로 묶여 있을 순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도 안 될 거 같았다. 그게 무어든 내 일을 찾아야 할 거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름 안정적으로 일해 왔던 곳을 오히려 지금 앞으로 10년 뒤를 준비하기 위해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옮겨 가는 작은 회사에서 매달 공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월급을 받기 위해 죽어라 일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