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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7, 난국: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윤태호 지음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13-01-01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9-04
페이지수 : 263 상태 : 승인
내용 중에 뭔가 있어 보이려고 애쓴 장그래에게 까불지 말고 나가서 장사를 해 보라는 내용이 나온다. 10만원을 줄 테니 뭘 사든 사서 되 팔아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내 보라는 미션이었다. 장그래는 고민을 한다. 무엇을 사고 팔아야 이익이 많이 남을까? 사실 간단하다. 아주 싼 물건을 사서 다만 몇 백 원이라도 붙여 되 팔면 되는 문제다.

하지만 그 간단한 게 쉽지 않다. 너무 싼 걸 사서 이익을 조금 붙여 팔아 봐야 크게 남는 게 없을 것이고(그마저도 다 팔았을 경우에 한 해서) 너무 비싼 걸 잘못 사면 아예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 접점에 해당하는 물건이든 뭐든 사서 팔아야 하는데 그걸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게 쉬웠다면 다들 장사로 떼 돈을 벌었을 것이다. 더욱이 장그래는 장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 왔던 사람이다. 낙하산으로 원 인터내셔널이란 설정 상 대기업에 인턴으로 뒤 늦게 합류해 2년 간 계약직이지만 그 위치까지 살아 남은 것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넘치는 성과를 낸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 더 한 걸음 나아가야 할 시점이 됐다. 이전의 이력과 이유가 어찌 됐든 이젠 한 명의 몫을 해야 하는 나름 직원이다.(계약직이지만) 그래서 그런 마음이 부담이 됐는지 사업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곳에 집중하게 돼 오 차장에게 헛짓하지 말고 나가서 순수한 장사를 해 보라는 업무 명령을 받은 것이다.

고민하는 과정 속에 길거리 상인에게 거의 사기당하듯이 양말과 팬티를 오 차장에게 받은 돈 10만 원 전부를 들여 사 버렸다. 이제 문제는 이 많은 양말과 팬티를 어디에 팔아야 하는 지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떠 올리고 싶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인 한국 기원에 가는 거였다. 딱 그 꼴이다. 보험이나 자동차 영업 사원이 된 사람들이 가족, 친지부터 시작해서 차나 보험을 파는...

장그래도 별 수 없었다. 나라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존심이었다. 물건을 판다는 건 상대에게 허리를 숙이는 일인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장사를 간과 쓸개를 다 내 놓고 하는 일이라고 할까. 자존심과 지난 과거에 대한 마음 등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다가 어쩔 수 없이 기원에 찾아 간다. 기원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온 장그래를 반겨 준다. 더불어 대기업에 들어 갔다고 칭찬과 축하까지 해 준다. 그런 그들에게 업무 테스트이긴 하지만 양말과 팬티를 팔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잘 알고 지내던 직원과 차를 한 잔 마시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기원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 네가 팔아 달라고 하면 다 사 줄 사람들이긴 한데 그게 과연 맞는 건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아차 싶은 장그래는 민망함만 가득 끌어 안은 채 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지하철에서 잡상인처럼 팔아 볼까 어쩔까 고민을 하다 결국 상사맨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찜질방 앞에서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할 수가 없어 깡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술기운을 빌어 횡설수설하며 물건을 팔았다. 찜질방 앞이라는 장소도 잘 잡았지만 다른 나라와 사업을 위해 업무를 하는 상사맨들을 타깃으로 잘 잡기도 했고 같은 상사맨으로서 회사는 달라도 후배 같아 보이는 친구가 술기운을 빌어 양말과 팬티를 파는 모습을 보고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물건을 죄다 사 줬다.

잘하기도 했고 못 하기도 한 거 같다. 우연이긴 하지만 찜질방이라는 장소와 같은 상사맨들을 타깃으로 잡은 점은 잘 한 거 같고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상황을 다 아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거기도 해서 기원에 가서 팔려고 한 것과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도 했다.

동시에 내가 제약 회사에서 영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 됐다. 나 역시 그만두기 전에 영업 활동을 위해 병의원이나 약국에 들어가야 했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밖을 서성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만 보낸 경우가 많았던 아픈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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