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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3, 기풍: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윤태호 지음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12-11-15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8-30
페이지수 : 261 상태 : 승인
그야말로 사회에 첫발을 제대로 내 딛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인턴 생활을 접고(이 또한 경쟁) 계약직이긴 하지만 2년 간의 직원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미지의 세계의 문을 막 연 그 느낌. 엄청나게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첫 직장에서 신입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에 본격적으로 첫 출근한 그 날이 생각났다.

자그마치 18년 전의 일이다. 막내 답게 가장 먼저 출근해서(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당시엔 경리도 있었다. 보통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바로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당시 사무실의 막내인 나도 나이가 어렸지만 난 그래도 2년이 넘는 군 생활과 4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와서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면 당시 경리는 정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20살 아가씨라고 하기엔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그런 그것도 상당히 조용하고 소심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경리였고 사무실 막내는 나였기 때문에 내가 가장 먼저 출근했다.) 청소를 하고 선배들을 기다렸던 순간이 기억났다.

신입 교육은 받았지만 실무는 또 다른 법, 미생에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나 역시 OJT를 근 한 달 넘게 받았다. 특별한 건 아니고 선배들이 영업 나가는 길을 선배들 차를 타고 쭐래쭐래 따라 다니며 잔 심부름 등을 하면서 일을(영업을) 어떻게 하나 보고 배우는 것이었다.

위로 사무실의 장인 실장이 있었고 그 밑에 과장 한 명, 대리 한 명 그리고 평 사원 둘 이 더 있었다. 실장 님을 따라 나선 기억은 없는 거 같고 실장 님 이하 선배들이 돌아가며 나를 대리고 다니면서 일을 가르치고 밥도 사 먹이고 그랬다. 그 한 달은 나름 할 만했다. 아니 할 게 없었다. 그저 선배들이 움직이면 착한 강아지처럼 잘 따라 다니고 선배들이 영업을 하는 순간엔 뒤에 고양이처럼 조용히 앉아 있으면 됐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되면 사주는 밥을 맛있게 먹으면 됐다. 새로 온 신입이라고 가급적 좋은 걸 사 먹이려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어 나름 즐거웠다면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 달이 전부였다. 그렇게 OJT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혼자 영업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매일 지옥 문을 여는 기분으로 영업을 다닌 거 같다. 정말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본사에서 신입 교육을 받았을 당시에 달달달 외웠던 회사의 약에 대한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약에 대한 장점과 단점 등을 멋있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뭐 그런 과정이 아니라 불법이지만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뒷 돈의 거래, 그러니까 소위 리베이트 싸움이 영업의 실체였다.

병 의원 원장들에게 우리 약을 써 주면 상대 제약 회사 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리베이트를 많이 줄 수 있다. 뭐 이런 걸로 의사들을 설득, 아니 꼬셨다. 여차하면 술집 등에 가서 접대를 하는 건 일상 다반사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 월화수목금 5일 중에 월수금이 의사 접대라면 화목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직원들끼리 회식을 했다.

거의 매일 퇴근 후 술자리가 이어졌다. 이 역시 처음엔 그러니까 OJT를 받던 기간엔 나름 괜찮았다. 일단 지금은 많이 줄였지만 기본적으로 술을 잘 하고 즐기는 편이다. 이 삼십 대 때는 엄청 자주 많이 마시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OJT기간으로 실질적인 영업적 압박도 없었고 의사들을 접대하는 자리는 아직 신입이니까 집에 먼저 가라고 했고 직원들끼리 회식을 할 때만 같이 하면서 좋은 안주와 술을 양껏 마시니(아직 신입 OJT기간이라 돈도 내지 않았다.) 싫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한 편으론 행복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신분으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의 안주와 술을 마시니 즐거웠다.

그런데 이마저 시간이 흘러 OJT가 끝나고 돈도 내야 되고 그야말로 일상이 되기 시작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술을 마시는 순간은 뭔가 잊혀지는 듯도 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어도 막내로서 가장 먼저 출근했어야 했다. 출근이 어려웠던 건 아니다. 아직 한참 젊었을 때라 그건 견딜 만 했는데 모든 일과 상황의 근저에 영업을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상당히 크게 다가 왔다. 아무래도 미생을 읽는 내내 제약 회사에서 일했던 순간이 많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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