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2, 도전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윤태호 지음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12-01-01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8-29
페이지수 : 283
상태 : 승인
2권의 초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아주 약간의 트라우마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1권 감상문에도 언급한 거 같은데 나 역시 첫 직장을 제약 회사 영업 사원으로 시작했다. 말 그대로 영업을 하는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사나 약사를 대상으로 우리 회사의 약이 좋으니 우리 약을 많이 써 주세요 하면서 영업을 다니는 게 주 업무였다.
제대로 못 했다. 7개월 여 만에 도망치듯이 그만뒀다. 너무 힘들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와 아주 약간 결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여하튼 영업을 하는 대리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대의 상황을 너무 생각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자기 회사의 이익을 돌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영업을 다니면 그런 감정을 아주 쉽게 느낄 수 있다. 영업 사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상대방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 더 최악은 이미 비슷한 다른 물건을 쓰고 있을 때 그 물건을 우리 걸로 바꾸는 경우다. 이미 견고한 성의 성벽이 세워져 있는데 공성하듯이 그 성벽을 허물고 우리 물건을 성에 채워야 하는 그런 경우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내가 제약 회사 영업 사원 일을 할 때 만난 모든 의사와 약사가 다 그런 경우였다. 너무 나도 당연하게 우리나라에 제약 회사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병 의원과 약국에서 굴지의 제약 회사 약을 이미 잘 쓰고 있었다. 그 틈 바구니를 당시엔 아직 업계 중위권 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의 약으로 대체한다는 건 정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출근해 하루의 영업 계획을 작성해 내고 가방을 들고 나가는 순간부터 한숨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약을 써 주는 병 의원과 약국에 관리 차원으로 방문하는 날은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아직 우리 회사와 전혀 거래가 없는 병 의원과 약국을 찾아 가는 날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일상적인 일인 듯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병 의원의 의사와 직원 그리고 약사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이미 다른 회사의 약을 쓰고 있는데 음식에 꼬이는 파리처럼 왜 찾아 왔냐고 냉대하는 곳에 들어가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건 가 본 적은 없지만 지옥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철판을 한 30cm 정도는 깔고 들어가서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그렇게 시도하면 할 수록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결국 일을 그만두기 전 얼마간은 여기저기 영업을 가겠습니다 하고 계획은 작성하고 나와서 갈 곳을 찾지 못해 정처 없이 떠 돌기만 했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그만 뒀다. 너무 힘든 기억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세상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아주 차가운 사실을 제대로 배운 경험이기도 했다.
더불어 책의 후반에 가선 주인공들이 정직원이 되기 위해 PT를 준비하고 발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나 같은 경우엔 인턴이 아니라 정직원으로 입사를 해서 그런 과정은 없었고 다만 회사의 많은 약을 알고 있어야 하기에 한 달 간 숙식을 하면서 진행된 신입 교육이 생각났다.
A라는 약이 있는데 어떤 기전이 있고 그 기전을 바탕으로 병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유하며 부작용은 뭐가 있는지 등등을 외우는 교육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해서 당시 입사해서 같이 교육 받던 40여 명의 동기 중에서 최종 성적을 3등으로 마무리할 정도로 나름 열심히 했고 잘 하긴 했다.
하지만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단편 지식을 달달달 외우는 것과 그 내용을 현실에 적용해 영업을 하는 건 천지 차이여서 신입 교육의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1년도 못 채우고 그만 두게 됐다. 그때 성적이 좋아서 일을 서울 본사에서 해 볼래 하는 사장님의 최종 면접이 있었는데 그때 만약에 내가 살고 있는 청주 사무실로 내려 오지 않고 서울에 있었다면 내 삶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도 간간히 하는데 미생 2권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간만에 강렬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