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1 , 착수
윤태호 지음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12-09-15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8-25
페이지수 : 299
상태 : 승인
웹툰으로 한 두어 번 보다 말았고 드라마도 한 두 편 보다 말았다. 분명 재미있는 웹툰이었고 드라마도 재미있을 거 같았지만 의외로 보다가 그것도 상당히 초반에 보는 걸 웹툰과 드라마 모두 그만 두었다. 아마도 제대로 보고 싶어서 담아 두었다 나중에 마음 먹고 보자 했던 거 같다.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번에 독서마라톤을 통해 그 기회를 잡아 보기로 했다. 독서마라톤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읽고 감상문을 쓰면서 몇 번을 언급했지만 독서마라톤이 독서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건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
주인공은 짧다면 짧은 20년 인생을 바둑만 두고 살았다. 물론 정확히는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이긴 하지만 5~6세 정도 까지의 꼬꼬마 시절에 뭘 하긴 아무래도 조금 어려우니 그 부분을 제외하면 의식하는 선에서 거의 평생을 바둑만 두고 살았다. 당연하게도 목표는 프로 기사로 입단해 대회에 나가 상금도 타고 하는 멋진 바둑 인생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 기사가 어디 쉬운가... 프로는 그야말로 그 분야의 전문가다. 더욱이 대회를 통해 돈을 벌어 먹고 사는 바닥의 프로는 더더욱 빼어난 전문가를 원한다. 그냥 전문가도 아닌 1등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원한다. 그래서 1등이 되면 대박이고 그렇지 못하면 쪽박을 차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후자가 됐다.
다행히 바둑을 하는 동안에 후원을 해 주시던 분이 바둑을 그만 두고 난 뒤에도 일자리를 알아 봐 줘서 바둑과는 전혀 상관없는 종합 상사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사실 엄청난 특혜다. 주인공이 후원해 주시던 분의 소개로 들어 간(현실적인 인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낙하산으로 들어 간) 회사는 설정 상 대한민국에서 손 꼽아 주는 회사다. 즉, 처음부터 그 회사를 목표 삼아 시쳇말로 머리가 터지도록 공부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소리다. 그런 곳에 주인공은 그냥 소개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 갔다. 이렇다 할 스펙도 없이... 물론 인턴이긴 하지만 요즘 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굴지의 대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엄청난 일이다.
평생 바둑을 두다 실패한 인생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 새로운 시작은 남 부럽지 않은, 아니 정확하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할, 그 분야를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그런 시작이었다. 말 그대로 판타지 같아서 더 응원을 하게 된 건지도 모르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냥 만들어 낸 이야기잖아 하고 넘어간 거 같기도 하다. 더불어 그렇게 회사에 들어 가 만난 상사들도 아주 좋은 요즘에 보기 드문 찐 상사들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모든 걸 바쳤지만 실패한 바둑 인생에 대한 나름의 보상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회사에서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당연하다. 전혀 준비하지 않은 곳으로 그것도 상당히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들어 갔으니 어려움까지 없다면 이 이야기는 성립 자체가 안 된다. 문득 나의 첫 직장이 생각났다. 지금은 일반적인 의미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첫 직장은 일반적인 회사의 그것도 영업직으로 입사를 했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바랐던 삶을 실패하고 말이다. 7개월 만에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듯이 그만 둔 첫 직장의 짧고 강렬했던 시간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이후로 일반적인 출퇴근 개념을 갖고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없어 나름 공감은 하지만 너무 마음 아프지 않게 한 두어 걸음 물러서 볼 수 있을 거 같아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더더욱 기대된다. 다 읽으면 역시 미뤄 두었던 드라마도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