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포: 배시은 시집
배시은 지음민음사
( 출판일 : 2022-10-26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8-24
페이지수 : 140
상태 : 승인
*제목: 잃어버린 얼굴
소공포
소공포는 구멍이 뚫려 있는 멸균된 면포로 지금은 나의 얼굴이다 나의 얼굴은 구멍이 뚫려 있는 멸균된 면포로 너의 얼굴에 내려앉는다 너와 나의 얼굴은 하나의 얼굴이다
얼굴은 접히거나 펼쳐진다 얼굴일 겹겹이 쌓인다
치아는 크기와 무관하게 하나씩 뽑는다 잇몸이 끽끽 뒤틀린다
치아가 뽑혀 나간다
치아가 간다
치아는 더 이상 얼굴이 아니다
치아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부딪힌다
물을 머금고 뱉는다 물은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붉게 퍼지면서 너를 쳐다본다 그것은 나의 얼굴이다
그것은 치아의 얼굴 그것은 공포를 모르는 얼굴이다 -<소공포> 中 '소공포'
올가 토카르추크의 <잃어버린 얼굴>이 연상되는 시. 현대인은 누구나 작게 구멍 뚫린 면포를 얼굴에 얹고 살아간다. 모두가 다 똑같은 그 얼굴은 처음엔 익숙해지기 어렵다. 어린 소녀가 갓 입게 된 브래지어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때 옆의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