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는 여자
샨사 지음 ; 이상해 옮김현대문학
( 출판일 : 2007-01-01 )
작성자 :
이○혜
작성일 : 2024-08-23
페이지수 : 317
상태 : 승인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소녀와 일본인 장교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1인칭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달한다.
작가 샨사는 1972년 북경에서 태어났다. 8세에 시를 쓰고 9세에 첫 시집을 내며 예술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천안문 사태로 떠들썩하던 1990년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으며 프랑스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쓰인 작품은 전부 프랑스어로 쓰여졌다.
일본인장교는 국가를 위해 명예롭게 죽겠다는 각오로 군인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남편을 잃은 과부이나 아들에게 '죽음과 비열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서슴지 말고 죽음을 택하라'고 한다. 아들은 자신은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어있다. 오로지 국가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국가에 모든 것을 바치는 애국자들이 대대손손 일본의 영원한 위대함을 건설해나갈 것이다(51쪽)
이런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바둑이다.
:내가 쳰휭 광장을 드나들기 시작한 이후로 바둑은 나로 하여금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나는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믿었다.(235)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이 '밤의 노래(야가)'라고 밝힌 중국인 소녀는 바둑을 둘 때 행복감을 느낀다. 바둑을 가르쳐준 사촌 류가 자신을 사랑함을 알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류를 떠나게 만든다. 우연히 알게된 대학생 민과 사랑에 빠진다. 민의 친구 징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하는 것까지 사랑하는 소녀는 민이 자신이 아닌 탕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민이 아니라 바둑을 두던 무명씨였음을 깨닫는다.
중국소녀에 대한 사랑으로 괴로운 일본인장교는 자신이 그녀를 망치고 말 것같은 예감을 한다.
:환한 달빛 아래, 막 태어난 매미는 솜씨 좋은 장인이 옥을 깎아 만든 조각품처럼 보인다. 두 날개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이슬방울처럼 비단같이 매끈한 살 위에 쭉 펴진다. 나는 벌레의 배 끝을 살짝 건드린다. 내 손가락이 스치자마자, 그의 혈관들이 와해되고 투명함이 변색된다. 벌레가 잉크색의 액체를 내뿜는다. 그의 몸이 함몰된다. 날개 중 하나가 점점 부풀어오르더니 끝내는 터져 검은 눈물로 퍼진다. 나는 우리 일본군에 의해 먼지로 변하고 말 중국 소녀와 중국을 떠올린다. (242)
피난길에 일본군에게 잡힌 중국소녀는 일본군인들에게 능욕당할 처리에 놓인다. 머리를 짧게 깍고 남자옷을 입은 소녀를 알아본 장교는 소녀를 죽이고 자신도 함께 죽는다.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조국, 가족, 자신의 명예를 다 포기한다.
간결하면서 응축된 문장들로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매우 아름답고 슬프다. 너무 이질적인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파멸을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17세기 일본시인 이싸의 시처럼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지옥의 지붕 위를 걸으며 꽃들을 바라본다". 지옥의 지붕 위를 걸을 때 꽃으로 위안을 얻지만, 꽃도 만개하는 순간 곧 지는 순간을 맞는다. 우리도 꽃도 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