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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

엘리자베스 키스 ;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공]지음 ; 송영달 옮김책과함께 ( 출판일 : 2020-06-10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8-19
페이지수 : 376 상태 : 승인
처음인 거 같다. 일제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을 그림으로 본 건. 그것도 우리의 눈을 통해 그린 그림이 아닌 서양의 화가의 눈을 통해 그린 그림으로 말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제 시대를 그림으로 본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역사 학자도 아니고 그저 한 국민으로서 우리 역사의 아픈 시기를 학교에서 한 번 배우고 잊지 않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의 생각으로는 그림으로 그 시대를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더 이상한 일이다.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르던 와중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눈에 띄었다. 책의 겉표지가 양장이어서 더 눈에 띈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일반 표지보다는 눈에 띈다. 더욱이 표지 색깔도 톤 다운된 부드러운 녹색이었다. 많은 책표지를 본 건 아니지만 일반적이진 않았던 거 같다.

여하튼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무심결에 뽑아 들었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 채. 제목은 'Old Korea' 오래된 한국? 낡은 한국? 아! 오래 전 한국! 옛날의 한국! 표지엔 친숙한 우리네 옛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한복을 입은 엄마와 어린 아이들 그림이었다. 계절은 겨울인지 두터운 방한모 등을 쓰고 있었다. 몰랐는데 '조바위'라는 모자 비슷한 물건이라고 책에 설명돼 있다. 한복은 모르긴 몰라도 겨울이니 솜을 누볐을 것이다. 한 아이는 서너 살 정도, 나머지 한 아이는 예닐곱은 돼 보였다. 나들이를 나온 건지 겨울 놀이를 하러 나온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게 아이들은 무언 갈 만지고 들고 있었고 엄마는 그걸 봐 주는 듯한 그림이다.

뒤에는 해태상이 그려져 있고 그림의 주인공들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뒤에 더 그려져 있었는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뒤에는 흐릿하게 동대문인지 남대문인지 모를 대문이 보이고 그 뒤에는 저 멀리 눈이 뒤 덮인 산봉우리도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림이지만 너무 친숙한 내용의 그림이었다.

이런 그림을 스코틀랜드의 화가가 당시의 우리나라를 방문해 직접 그린 거라고 했다. 그런 그림이 실려 있고 이런 저런 설명이 추가된 그런 책이었다. 어쩌다 보니 요즘 고려사에 이어 조선사 그리고 이제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우연인지 인연인지 나도 모를 어떤 힘이 이끈 거 같기도 하다. 그 시대를 이렇게 볼 수도 있으니 한 번 봐라 뭐 이런 건가? 싶어 책을 빌렸다.

책엔 더 많은 그리고 다양한 그림이 실려 있었다. 역사적인 인물도 있었고 지극히 평범한 아낙과 촌부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화가는 우리나라에 1919년 그것도 3월에 왔다. 3.1운동이 끝난 3월 말에 왔는데 3.1운동으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을 텐데(일제에 의한 우리 백성들이 핍박을 받았을 시끄러움...) 그림 속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3.1운동이 끝나고 난 뒤에 왔고 설령 핍박을 받는 모습을 봤다 할지라도 태평하게 그렸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림도 하나의 기록이기에 기록으로서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어 보니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다.

지금이야 별 일 아니지만 놀라운 건 이 화가는 여자였다. 너무 신기한 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시절의 이야기다. 더욱이 나라를 빼앗겨 뒤숭숭한 시기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때 외국인이 그것도 여자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모델을 해 준 혹은 자처해준 우리 조상님들이 너무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도 웬 외국 여자가 길 가던 나를 붙잡고 저기 그 쪽을 대상으로 그림 좀 그릴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면 일단은 네? 하고 반문을 할 텐데...

뭔가 비현실적이기도 했고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처럼 서양인들이 바라 본 조선인의 모습 중에 오래 된 것을 소중히 여기지만 새로운 걸 또 잘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의 단면인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신기하고 재미있고 한 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모델이 된 대부분의 당시의 조선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단정하다. 그림을 그린 화가도 그렇고 다른 외국인들의 기록에도 조선인들은 기품이 있고 위엄이 있으며 덩치도 일본인보다 크고 몸가짐과 옷 매무새가 단정하다고 나와 있다. 그런 모습이 그림에 오롯이 담겨 있다.

더욱 더 신기한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 조선에 외국인이 있었다면 또 얼마나 있었을까, 당연히 조선에 있는 외국인 사회는 상당히 좁았을 것이고 그야말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에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이나 당시의 사회상을 바라 본 화가의 기록 등을 보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외국인들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인물만 해도 헐버트라든지 스코필드 등이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 세워진 의미 있는 소위 '초대'라는 단어가 붙는 몇몇 단체나 시설 혹은 건물 등을 만들고 세운 외국인들의 이름도 많이 나왔다. 지금은 조금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내가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까지 매년 겨울이면 학교에서 단체로 샀던 크리스마스 씰이 그 때 처음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걸 만든 외국인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씰에 들어 갈 그림을 이 책의 화가도 세 번이나 그려 줬다는 이야기를 읽고 그 그림을 봤는데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아마 책표지에 소개된 이 감상문에도 자세히 소개한 그림도 크리스마스 씰에 들어 간 그림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지도 못한 그림으로 가슴 아픈 일제 시대를 볼 수 있어 그 의미가 조금 남달랐으며 그림으로나마 어려운 시절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을 잘 그려 줘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화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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