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는 나라의 공장 =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김난주 옮김문학동네
( 출판일 : 2012-01-01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7-07
페이지수 : 261
상태 : 승인
*제목: 공장들에서 찾는 세상의 원리
상담실에 있는 사람 중에는 '대머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카운슬러도 있다. 그래서 내가 "저, 대머리라는 말은 사내에서 못 쓰게 돼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천만의 말씀"이라고 한다. "대머리는 아무리 다른 말로 바꿔 부른다 해도 대머리입니다. 뭐, 사람에 따라 반응은 여러가지지만, 그런데 일일이 신경쓰며 전전긍긍하면 오히려 더 좋지 않습니다. 그런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설령 가발을 쓰더라도 가발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또 신경을 쓰고 말죠." 아하, 옳으신 말씀, 굉장합니다,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그 카운슬러도 "아, 실은 저도....."하더니 슬금슬금 가발을 벗었다. 실제로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 '대머리는 대머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단언하니 왠지 설득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26p, '한없이 밝은 복음 생산 공장 아데랑스' 중)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에 매번 당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쓴 문유석 작가는 '하루키가 쓴 글이라면 팬티 개는 법이라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매우 동감하는 바.
<해뜨는 나라의 공장>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고 그의 오랜 콤비인 안자이 미즈마루가 일러스트를 넣었다. 총 일곱 군데 공장을 함께 견학하며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교육용 인체모형 제작 공장을 시작으로 지우개 공장, 결혼식장(하루키에 따르면 결혼식장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공장이란다) 등을 지나 마지막 가발공장까지.
맨 위에 인용한 가발공장 매니저와의 대화를 예시로 모든 공장들마다 인생(과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무언가 깊이 연상되어 마냥 웃으면서만 읽히진 않는다. 하루키는 그의 글마다 무언가를 끝없이 연상시키는 메타포의 달인이다. 심지어 이런 견학기록문에서 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