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바다
( 출판일 : 2023-05-26 )
작성자 :
최○숙
작성일 : 2024-07-06
페이지수 : 404
상태 : 승인
오래전 TV 프로그램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내가 좋아하는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을 읽어주는 김상욱 물리학자를 보게 된 신선함이 아직도 푸릇푸릇하다. 저자 소개에도 "예술을 사랑하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다정한 물리학자"라고 되어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물리학자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과학에 관한 한 내 지식은 학교 때 어려워서 외면했던 과목이었던 만큼 얼마되지 않는 것이 지금에 이르러선 몇백 광년 떨어져 있다는 멀고 먼 별에나 가 있을까 싶다. 아니 있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의 시집에서 빌려왔다는 제목이 과학책도 이렇게 다정한 물리학자가 썼으니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했다. 예감이 맞았다. 예술적으로 서술하는 물리학자의 과학책답다는 느낌이 읽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이 책은 '원자에서 인간까지'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그 분자가 모여 별과 우주를 이루고, 그 우주에서 경이로운 우연으로 피어난 생명이 진화하여 지금의 우리가 되기까지의 대서사시를 일목요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키워드는 '창발'이라고 하는데 원자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되기까지 이전 단계마다에 "존재하지 않았던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것을"의미한다고 한다. 아래와 같은 예시는 적절하고도 멋지다.
한글 자모가 입자라면 단어는 원자라고 할 수 있다. 'ㅅ' 'ㅏ' 'ㄹ' 'ㅏ' 'ㅇ'이라는 기본 입자가 모여 '사랑'이라는 원자가 되었지만, 자음 'ㅅ' 'ㄹ' 등으로부터 단어 '사랑'이 갖는 의미를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이라는 의미는 한글 자모가 모여 각각의 자모에는 존재하지 않던 의미가 새롭게 나타난, 즉 창발된 것이다.
또 '죽음'의 의미를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에 이어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서술했다. 냉철한 물리학적 사실 안에 그 이상의 오련하지만 영원불멸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는 나무가 일부가 되어 다음 생을 살고 싶다.
내가 가진 미천하고 알량한 과학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했다. 그러나 절묘한 비유로 설명하는 친절함에 아주 오랜만에 앎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과학 지식을 쌓았다. 어떤 문장들은 분명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는 간명한 것들인데 때로 영감을 주는 것처럼 오묘하게 읽혔다. 과학책을 읽는 즐거움에 교양까지 쌓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