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복복서가
( 출판일 : 2024-04-17 )
작성자 :
조○행
작성일 : 2024-07-03
페이지수 : 260
상태 : 승인
이 책은 저자의 여러 여행 경험과 여행에 관한 저자의 고찰 등이 담겨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잦은 이주를 해야 했던 경험으로 인해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다'는 프로그램이 자기 안에서 작동하게 되었으며, 자신은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진다고 말한다. 그만큼 저자에게 여행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저자의 본업인 글쓰기와 인생, 키우는 동물까지도 여행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저자의 사유의 흐름을 여행하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오디세우스와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의 일화를 여행자의 정체성의 위기와 연관지어 설명한 <노바디의 여행>은 특히 흥미로웠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버린 바다 위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대접받고 싶은 유혹을 느꼈고, 그 허영심으로 인해 위험을 자초한다. 스스로를 노바디로 낮춰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성공적인 탈출에 흥분해서 다시 허영과 자만이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결국 그는 십 년에 걸쳐 고난을 겪게 된다. 저자는 이 일화의 교훈을 여행자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해석했다.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의무의 공간이자 상처가 가득한 집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호텔을 좋아한다는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는 제일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꼭 호텔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하며 번다한 일상사에서 벗어나 잠시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매번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가족여행을 떠나곤 한다. 학교를 유난히 힘들어하는 첫째 아이에게 한 학기를 잘 마쳤다며 주는 상이다. 여행지는 아이가 가고 싶어했거나, 좋아할 만한 장소들이다. 이 여행을 고대하며 아이는 남은 학기의 날들을 손꼽으며 버텨낸다. 가끔 학기 중에 주말을 이용해 떠나기도 한다. 마지막 날에 접어들면 아이는 다시 돌아가야 할 학교생활에 침울해지지만, 적어도 여행 중에는 힘들었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인생도 결국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나는' 여행 아닌가? 여행을 한다는 관점에서 삶을 산다면 좀 더 흥미진진하고 특별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저자가 이탈리아와 밴쿠버를 거쳐 뉴욕으로 옮겨 이 년 반을 체류했던 어느 날 부부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여행 가고 싶다."
"지금도 여행 중이잖아."
"아니, 이런 거 말고 진짜 여행."
아무래도 여행의 특별함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오는 것 같다. 여행도 길어지면 그것이 또다른 일상이 되어버릴테니. 아, 쓰다보니 훌쩍 여행가고 싶다. 돌아와서 당시 사진을 보며 "우리 그때 참 행복했지"하고 추억할 여행. 또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을 힘내게 해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