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1
J. K. 롤링 지음 ; 강동혁 옮김문학수첩
( 출판일 : 2020-01-20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6-30
페이지수 : 279
상태 : 승인
세상 모든 일이 이미 정해진 운명일까? 그때 그때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걸까? 아니면 운명과 선택에 의한 결정이 적절히 섞여 돌아가는 것일까?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모두 다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모두 틀린 거 같기도 하다.
해리는 운명처럼 절대 악이라 할 수 있는 볼드모트와 갓난아기 일 때부터 맞서기 시작했다. 그 부분을 주인공인 해리도(자신의 운명적인(?) 상황을 알고 난 뒤부터) 주변 사람들 모두 아니 마법 세계 전부가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걸 넘어 모든 일이 결국은 해리와 볼드모트의 대결로 수렴해 간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그야말로 운명적인 상황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지는데 혼혈왕자 1편에서 해리가 문득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볼드모트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나? 다른 사람이 그럴 수는 없었는가? 아니면 엄마가 죽음을 불사하고 볼드모트를 막아 설 수 없는 상황이어서 엄마도 아빠도 나도 모두 죽었다면 나의 이런 운명을 다른 누가 받았을까? 아니면 마법 세계는 그냥 악의 무리에 잠식된 걸까?
내가 아니라 누가 그런 상황을 막아 섰다면 그게 누구였을까를 생각하는 와중에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네빌로 그 시선이 향했다. 네빌은 사실 소설 내용 중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 해리, 론, 그레인저 삼총사의 비중에 비하면 가끔 나오는 주변 인물일 뿐이다. 영화에선 거의 엑스트라, 대사가 조금 있는 엑스트라 정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네빌도 볼드모트에 의해 부모님이 상당한 고통을,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입었고 입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즉, 볼드모트가 마법 세계를 지배하려던 시도를 처음으로 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대항한 사람들 중에 네빌의 부모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해리는 엄마가 머글이고 아빠가 마법사인 소위 잡종, 머드블러드인데 반해 네빌은 마법사 순수 혈통이다. 이러저러한 소소한 상황이 조금만 틀어 졌어도 해리가 아닌 네빌의 이마에 번개 흉터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물론 그렇게 따지면 역시 마법사 순수 혈통인 론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데 어떤 선택에 의한 건지 운명인 건지 뒤 섞인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론 해리가 그 운명을 맞게 됐다. 네빌이 해리를 대신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나름의 증거 혹은 정황은 소설 곳곳에서 은근히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진정한 그리핀도르 소속의 학생만이 기숙사 배정 모자에서 그리핀도르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검을 뽑을 수 있다고 했는데 딱 두 명, 해리와 네빌만이 그 칼을 뽑았다.
뭐 그런데 사실 그게 운명이든 뭐든 그저 눈 앞에 닥친 일이라면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