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장편소설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문학동네
( 출판일 : 2019-07-26 )
작성자 :
이○선
작성일 : 2024-06-30
페이지수 : 150
상태 : 승인
1장에선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을 담은 이야기가 아버지 올라이의 시선을 중심으로 짤막하게 묘사된다.
2장에선 곧바로 요한네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죽음을 바로 인지하진 못하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했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긴 했지만 그가 살아왔던 일상이 그대로 소개되어 읽는 나조차도 주인공이 죽은 존재라는 사실을 즉시 깨닫지 못하였다.
p82
-그럼 남는 건 땅뿐인가, 페테르가 말했다
-그러니까 바다가 더이상 자네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거라네, 페테르가 말했다
이야기의 중반쯤, 줄곧 어부생활을 해왔던 요한네스가 던진 루어(미끼)가 물 밑으로 잘 내려가지 않자, 페테르는 바다가 요한네스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남는 건 땅뿐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죽은 자는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는 진리의 뜻이 담긴 대사가 주인공이 죽은 자임을 비로소 깨닫게 해주었다.
p89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제 재주껏 대화를 이끌어야지, 그녀에게 쓴 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말고
-저기 그런데 편지 고마워요, 안나 페테르센이 말한다
-네, 요한네스가 말한다
젊은 안나 페테르센과의 대화 장면에서 죽은 자들의 과거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겠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p131~p132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했다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p133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죽음의 너머인 그곳을 묘사하는 글을 따라 읽으며 요하네스처럼 나도 불안감, 호기심이 잔뜩 생겼지만
그곳에 사랑하는 건 다 있고, 사랑하지 않는 건 없다는 페테르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그곳에 전부 있다면, 두려울 게 없지.
p138 (옮긴이의 말)
-어부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과 그의 흘러간 삶, 그리고 이제 막 다가오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아침 그리고 저녁』에도 어김없이 피오르의 바람과 파도, 늙은 어부의 기침소리 같은 것들이 있다. 어눌한 구어체와 비문,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사슬, 동일어의 반복, 대화와 대화 사이의 침묵을 따라가다보면 읽는 사람은 어느 순간 문장과 하나가 되어 그것들이 지어내는 피오르의 리듬을 타게 된다.
작가 욘 포세는 노르웨이의 서부 해안도시에에서 태어났고, 그의 많은 작품들의 배경이 피오르(만)의 자연이라고 한다.
극작가로 유명하다는 작가의 글 답게,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 문체라기 보다는, 희곡의 형식을 더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한 편의 연극을 글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짤막하고 함축적인 대사들로 구성해 인물들의 대화를 더욱 흥미있게 지켜볼 수 있었고, 읽는 나로 하여금 대사 외의 것들을 더욱 상상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과정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만을 따라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보여준다. 하나, 부모의 사랑과 노력 끝에 요한네스가 탄생하는 순간을 긴장감있게 표현한 글의 시작과 사랑하는 남은 자식들이 곁에 선 채 자신의 관이 흙 속으로 파묻히는 모습을 뒤로하며 비로소 그곳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탄생과 죽음 그 자체는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곧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겐, 참으로 의미있는 책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