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수미 에세이
수미 지음어떤책
( 출판일 : 2023-10-20 )
작성자 :
동○영
작성일 : 2024-06-24
페이지수 : 287
상태 : 승인
지금 도서관에 와서 이 책을 반납하기 전 구절을 정리하고 있는데 내 근처에는 잠든 아이를 유아차에 눕힌 한 여성양육자가 아델의 음악을 듣고 있다. 약간 소리를 높인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그 유명한 음악 멜로디를 백색소음처럼 같이 들으며 이 감상을 쓰고 있다. 아이는 약 30분 가까이 자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시절보다는 잘 잔다고 잠시 생각했다. 도서관이 가까워 유모차를 끌고 잠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의 시간을 같이 응원한다. 도서관이 가고 싶기도 하고, 도서관 밖에 갈 곳이 없기도 했던 나의 유아차 몰던 시절을 생각하면, 손목보호대와 복대를 찬 채로도 책을 읽고 반납하고 대출하겠다고 도서관에 온 내 처지는 지금 누군가에겐 부러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마셔도 눈치보고, 밥을 먹이고, 저지레를 두려워하던 그 시절은 과거니까. 하지만 그 굴레는 다른 누군가가 물려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어떤 양육자도 지나칠 수 없다. 우리에게 마이크가 없고,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양육자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다.
남자들이 나한테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꺼리지 않는다. 엄마가, 배우자가 가르쳐주지 않아서 할 줄 모른다는 말을 40년 넘게 듣고만 있는 인간에게서는 평가되고 싶지 않다.
그냥, 나는 현재 내 옆에서 책 읽는 여성과, 유아차를 가까이한 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여성의 시간을 응원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는 보람을 조용히 만끽하는 중이다.
우울한 엄마는 아이에게 엄마가 유일한 우주가 될까 두렵다. 세 아이에게 내가 전부가 아니길 간절하게 빈다. 나의 한계가 아이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쉽게 인식한다는 건 어쩌면 우울증이 준 지혜일 것이다.
고맙게도 나의 친구들은 아이들에게 위계 없는 다정 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친구는 나와 일대일 관계를 맺은 사람이므로 내 가족과 다정한 관계를 맺을 책임은 없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아이들과 사는 집을 찾아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대화가 뚝뚝 끊기는 집을 찾아오는 데에는 얼마나 큰 용기와 애정이 필요한지. 236쪽
"못하는 일을 맡으면 잘 못할까 봐 더 신경 쓰이고 기분이 나쁘거든. 그런데 육아가 딱 그랬어. 낙제점을 받는 기분.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인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거든. 아이의 우주를 엄마가 온전히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는 세상의 시선이 너무 힘들었어. 세상은 엄마의 희생만 기념하지, 엄마의 존재를 기념하진 않더라고." 260쪽
세월이 흘러 나는 원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엄마가 됐다. 자식을 키우면서 내가 겪은 적 없는 '좋은 부모'를 부단히 상상해야 했다. 취해서 자식에게 폭언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는 건 알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잘 몰랐다.
"네 말이 맞아.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되는지 자세 히 배우지 못했지. 그러니까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해. 나 좀 봐. 우울증 약 먹으면서 아이들 키우잖아. 우울한 엄마가 나쁜 엄마 같아? 아니,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방치하는 엄마가 진짜 나쁜 엄마야." 253쪽
글쓰기 강연을 할 때면 나는 시민들이 세상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양'에 있다고 강조했다. 힘 있는 한 사람의 말을 넘어서는 건 양이라고. 사회적 약자는 양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나 또한 글이 가진 한계를 느꼈다. 173쪽
어떤 엄마들이 자신의 행동이 아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이라고 믿을 때,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능력을 잃어 간다. 161쪽
창원 여성들은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 일을 그만뒷다가 아이들이 학령기에 이르렸을 때 다시 일터로 1왔다. 여성들은 낮은 급여와 처우를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아이들 하원하기 전에 일을 마치기 때문에 만족해요" "학원비 번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요"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질 낮은 일자리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어머니 역할에만 만족하는 현실에선 여성들이 왜 시급이 적은지, 왜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지 질문하기 어렵다. 152쪽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나란히 앉은 면접자들에게 편접관은 공통 질문을 했다. 당신의 장점은 무엇이냐고 인남은 당당하게 말했다. "아들을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혼자 키웃 어요. 저는 이렇게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면접관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후 인남은 다른 면접자들이 여러 질문에 답할 동안 아무런 질문을 반지 웃했다. 인남에게 육아는 자궁심을 주는 일이었지만 이혼 후 혼자서 아들을 키웠다는 사실은 취업에 경력도 장점도 되지 않았다. 또 다른 편견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돌봄이라는 무지막지한 책임감을 온몸으로 수행하는 엄마들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다. 하지만 세상의 일터 에서 엄마는 언제든지 그만둘 것 같은 '책임감 없는 노동 자'로 취급된다. 135쪽
많은 엄마들이 "탈진된 것 같은 몸" "완전히 소진된 마음"을 토로하지만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는 의아 한 얼굴로 되묻는다. "엄마가 왜 번아웃이 와?" 많은 이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엄마의 과로는 생략된 페이지다. 한국 사회에서 육아는 엄마 홀로 고군분투하는 생존게임이다. 82쪽
의사는 청진기를 아이의 배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엄마가 뭘 잘못 먹였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 말의 의미가 확 다가 왔을 때는 이렇게 받아치고 싶었다. "다시 말해 봐." 하지 만 변명하듯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제 미역국이랑 계란말이.... "
"배에 가스가 차 있고, 장 상태도 안 좋고." 71쪽
몇 년 전, 출판 관련 미팅에 참석했을 때다. 나는 원고를 의뢰한 사람이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들고 반가웠다. 양육자라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나도 세 아이의 엄마임을 밝히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에이, 그럼 글 쓸 시간도 없겠네.'
'엄마'라는 사실을 밝힌 순간 나는 전문성 있는 작가에서 '애 엄마'가 됐다. 그의 무례함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곧장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아빠라는 사실은 내게 책임감 있고 의젓한 어른이라는 의미였지만, 내가 엄마라는 사실은 그에게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장애 요소에 불과했다. 58쪽
그 시절 내게 필요했던 건 사람의 손이었다. 잠깐이라도 화장실에 갈 수 있게 아이를 안아 줄 수 있는 손, 흠뻑 젖은 기저귀를 갈아 줄 손, 잠투정하는 아이를 토닥여 주는 손, "제발 잠 좀 자라" 하고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타이르는 나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줄 손. 그것이 실현되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우울증은 천진난만하게 나를 덮쳤다. 22쪽
몸도 제대로 쉴수 없는 마당에 마음까지 챙기기는 더 어렵다. 오히려 엄마라는 이유로 감정을 억누를 때가 허다하다. 이런 고통스러운 인내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학습된 모성이다. 이를테면 한국인 여성의 내면에는 이런 류의 말들이 새겨져 있다.
'엄마는 위대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이겨 낸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 첫 번째 말은 엄마들이 아무리 아파도 소리칠 수 없게 만들고, 두 번째 말은 엄마들에게 인간 이상의 초인적인 존재로 거듭나라고 요구한다. 둘 다 엿 같은 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정말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있다면, 출산을 마친 엄마에게 끝내주는 휴가를 줄 것이다.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