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 김곰치 장편소설
김곰치 지음한겨레출판
( 출판일 : 2011-01-01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6-22
페이지수 : 363
상태 : 승인
*제목: 그대, 노혜자 씨에게
"어....간....쥬....알...."
어서 간호사실에 쥬스 한 박스 갖다주니라, 알았제? 남한테 해코지 한 번 해본 적 없는 당신은, 바르고 잘 웃고 싱긋싱긋 농담 잘하는 선인인 당신은 입에 마비가 와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도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주사 한 방이라도 더 정성스레 놔주지 않겠냐는 엄마들 그 특유의 살가운 사고 방식들. 성인인 저에게 여전히 어렸을 적 훈육처럼 예의와 사람됨을 당부하고 하시는 제 어머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니는 아침에 신문에도 줄을 치대? 난 그런 사람 처음 봤다."
당신은 병상을 지키는 아들을 갸웃갸웃 바라보며 말합니다. 현직 씨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을 새삼 마음 아파하며 읽던 책의 내용을 당신에게 잠시 읽어줍니다. 그때의 대화는, 밥 먹었느냐 평일 낮에 이래 밖에 나와도 되나? 여름 빨래부터 내놔라의 실리적 말들이 아닌, 어쩌면 당신과 아들이 처음 의견이라는 것을 나눈 사람 대 사람의 대화였습니다. 현직 씨는 당신에게 생경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이런 이야기를 하실 줄 아는구나, 그동안 함께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구나, 무엇보다 어머니라는 이림의 여자를 진정으로 심각하게 알고 싶어한 적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구나!
"지 엄마가 어릴 때 칼국수를 많이 해줬겠제."
직장 시절 단골집에서 팔던 젊은 아줌마의 칼국수가 어쩜 그리 맛잇었는지 모르겠다는 아들의 말을 곰곰이 듣던 당신의 코멘트.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당신의 말에 현직 씨는 퍼뜩 깨닫습니다. 그렇겠다, 그럴 수 있겠다, 세상 모든 곳에는 엄마들의 손길이 닿아있구나.
엄마 노혜자 씨가 아니라 한 사람 '그대' 노혜자 씨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대는 살갑고 정 많은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당신 존재 자체만으로도 오롯이 사랑받기 위해 이 세상에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그녀의 이름으로써 존재할 수 있게 기억하고 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잠시 멈춰 세상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기왕이면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먹는 추억을 쌓겠습니다. 빗소리 와와 할 때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아니, 그대와 함께 칼국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