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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 김태정 시집

김태정 지음창비 ( 출판일 : 2004-01-01 )
작성자 : 최○숙 작성일 : 2024-06-22
페이지수 : 131 상태 : 승인
감정에 북받치거나 하고픈 말이 너무 많을 때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이 시집을 여러 번 읽고 있지만 아직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너무나 무성해서 어두운 여름 숲 속 정글을 헤매는 마음 길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의 지난한 삶은 늘 먹먹해서 가슴 깊이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시에 나타난 삼십에서 사십까지의 역정을 곳곳에서 뽑아 정리해 보는 것으로 일단 발걸음을 내디뎌 보기로 한다.

그래서 오년 뒤 불쑥 아이엄마라도 되어 있으면 어쩌나. 그 물음의 쓸쓸한 의도를 알아차려 문득 슬픈 나는 오년 뒤 서른다섯.
그때 나는 서투르고도 어수룩한 갓 서른이었으므로 <낯선 동행> 일부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었듯 봄산에서 한때,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
곧을 태 곧을 정, 까짓거 대나무처럼만 살면 될 거 아닌가 뜻도 모르는 채 내 이름 석자에 온 생을 맡겼습니다 곧고 곧아라 삶도 사랑도, 내 이름대로만 살면 될 거 아닌가 겁도 없이 <봄산> 일부

햇어둠 내린 섬들은/마치 종잇장 같고 그림자 같아/영판 믿을 수 없어 나는 문득 서러워졌는데/그런 밤이면 하릴없이 누워/천장에 붙은 무당벌레의 숫자를 세기도 하였습니다/서른여덟은 쓸쓸한 숫자/이미 상처를 알아버린 숫자 <동백나무 그늘에 숨어> 일부

꽃잎의 향기는 달콤하나/향기를 피워올리는 삶은 쓰거웁구나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의 청매화차라니
삶이 초봄의 몸살 같은 마흔은/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잎의/쓰디쓴 맛을 사랑할 나이<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은 쓰다> 일부

'서투르고도 어수룩' 하고 '이름 속에서 헤매며' 살았지만 그 삶은 '이미 상처를 알아버린' '서른여덟의 쓸쓸한 숫자'가 되었으며 마흔은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잎의 쓰디쓴 맛을 사랑할 나이'로 마무리되어 나타난다.
이 아프고도 서글픈 시인의 서정은 <물푸레나무>에서 복선처럼 그려져 더욱 안타깝다. 시 전문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겟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물 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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