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엔도 슈사쿠 지음 ; 공문혜 옮김홍성사
( 출판일 : 2003-01-01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6-16
페이지수 : 308
상태 : 승인
*제목: 침묵하지 않았다
여러 독서 모임에 메여있는 입장에서 순수하게 내가 고른 책을 읽는 경우가 줄고 있다. 독서 모임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절대 읽지 않을 법한 장르 또는 있는 줄도 모를 책의 존재를 알게 되는 반가움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침묵>.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천주교의 전파와 박해를 서양 선교사의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작가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 책의 5분1 정도 지나서는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지만 첫 페이지의 진입 장벽이 너무 커서 계속 미루고 미뤄 해치우듯 독파해버린 책. 무교인 나로서 종교의 느낌이 주는 생경함, 옛 일본 가난한 군상들의 처연함, 종교 박해 고문에서 느껴지는 끔찍함들이 책에게 다가가기 힘들게 했다. 그만큼 다른 세계에 빠지게 해주는 독서 본연의 임무에는 가장 부합했던 책.
책의 제목처럼 신은 계속 침묵한다.(최소한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신 뿐 아니라 모든 것은 침묵한다. 나무도, 늪도, 자연도, 신도들도, 고문을 가하는 일본 관리들도, 심지어 선교사 본인 자신조차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가끔은 침묵만큼 '무한히' 생각을 전하고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 '소통 방식'도 없다고.
로드리고 신부는 신이시여 왜 우리를 계속 구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지만 신은 묵묵부답.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로드리고는 결국 신의 음성을 듣는다. 최후까지 네 옆에 있겠다는. 그 말은 로드리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그렇다. 신과의 합일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있었던 것.
무교인으로서 종교계에 명작이라 추앙받는 책 한 권을 읽으며, 특정 종교를 갖는 것은 자유지만 삶에 있어서 최소한 종교적인 자세일 필요는 있겠다는 단상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