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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송은경 옮김민음사 ( 출판일 : 2017-01-01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6-13
페이지수 : 309 상태 : 승인
*제목: 영국이라는 품위

영국은 귀족의 나라다. 귀족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마치 군주처럼 행동하며 제반을 누린다. 그들은 대저택에 살며 하인을 부리고 여가를 즐기며 남자 주인 옆에는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바틀러'(집사)가 상주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몇십 년 간 그 일을 수행한 한 집사 '스티븐스'의 이야기이다.

그는 매사에 정중하다. 때론 너무나. 함께 지내던 직 '켄턴 양'과 연정(비슷한 것)을 나누기도 했지만 본분에 집중하느라 기약 없이 헤어지고, 아버지의 임종 날에도 저택의 연회를 끝까지 수행한다.

"올라가서 아버님을 뵈실 거죠?"
"난 지금 몹시 바빠요, 켄턴 양. 잠시 후라면 몰라도."
"그럼 제가 부친의 눈을 감겨 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해 준다면 더없이 고맙겠소, 켄턴 양." "켄턴 양, 부친께서 방금 작고하셨는데도 올라가 뵙지 않는다고 막돼먹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말아 주시오.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아버님도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처신하기를 바라셨을 거요."(p.139)

1923년의 회담, 특히 그 마지막 날 밤이 내 직업상의 발전에 전환점이 되었다는 말은 순전히 내 나름의 소박한 기준에서 하는 이야기란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날 밤 내게 붙어 다닌 중압감을 고려한다면, 내가 그날 마셜 씨 같은 사람의 '품위' 혹은 내 부친의 그것을 약간이나마 보여 주었다가 감히 말한다 해도 지나친 자기 착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p.143)

작품 내내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품위'이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란 무엇이냐'라는 말에 답은 품위를 잃지 않는 자이며 그것은 주인이 제시하는 높은 임금이나 휘하 직원의 규모, 화려한 가문의 명성 만에 있지 않다고 주창한다. 또한 주인의 도덕적 진가와 그것을 고귀하고 충실하게 지켜주는 자로서의 집사의 역할을 신념으로 제시한다.

좋다 이거야, 근데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다 버린다고? 요즘으로 따지자면 스티븐스는 워라벨 박살의 일 중독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참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은 내심 그를 동경스러워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요즘에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티븐스는 자신이 곧 달링턴 가문의 집사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한 자이다. 그리고 사실 스티븐스의 정체성은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신념을 관통한다. 미국에 밀릴지언정 그 옛날의 영광과 품위는 절대 꺾이지 않는. 그가 몇 십 년의 집사 생활 처음으로 휴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 것을 제안한 사람이 새로온 '미국인' 패러데이 주인 어르신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작가의 문장력과 그 안의 심오한 비유들이 너무나 좋아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몽땅 읽어보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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