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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검은 피: 허연 시집

허연 지음민음사 ( 출판일 : 2014-04-28 )
작성자 : 동○영 작성일 : 2024-06-10
페이지수 : 128 상태 : 승인
정의는 반드시 이기지 않는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교통은 얼마나 힘겨운가. 감화되지 않는다. 함께 사는 건 함께 죽는 것 치열하고 아쉬운 것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중
3연 전체

허연 시인의 첫 시집이다.
30년 전에 출간된. 30년이 지나 그의 첫 시집을 읽었다. 30년 동안 몰랐던 시인이라니. 시의 세계는 정말 넓다. 어느 문학보다도 넓은 것 같다. 시집을 읽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듣는 것 뿐이다. 섣불리 이해한 척 좋은 척 하지 않고 하얀 마음 상태로 있으려고 한다. 그렇게 같이 시를 읽다 보면 시가 다시 온다. 시를 위해 온 마음으로 하나의 장면을 겹겹이 그리는 시인의 순간의 감정을 살짝 만져본다.

20년 전에 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비가 와서인지
초상집 밤샘 때문인지
마음은 둘 데 없고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온 너의
조그맣던 신발과
파리한 입술만 어른거린다 너무쓸쓸해서
오늘 저녁엔 명동엘 가려고 한다 중국 대사관 앞을 지나
적당히 어울리는 골목을 찾아 바람 한가운데
섬처럼 서 있다가
지나는 자동차와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어 보이려고 한다

-저녁, 가슴 한 쪽 중

을 읽고 나서 84번을 타러 나갔겠지. 명동에서 섬처럼 서 있다는 기분을, 그 마음을 둘 데 없어 하루, 일주일, 한달 내내 부풀려서 더 마음 둘 데가 없었겠지.

지금 읽어서 다행이다.
마음 둘 데 없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금은 덜 부풀리는 법을 알게 된 나이니까.

2024년의 젊은 마음들은 이 시집 읽으며 얼마나 충만해질까. 상상만으로도 새삼 알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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