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을 복: 순리대로 살다 깔끔하게 가겠다는
신문자 지음한사람연구소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김○진
작성일 : 2026-08-13
페이지수 : 296
상태 : 승인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이 나오는 이유는, 인간은 점점 늙고 낡고 지치기때문이다. 끊임없이 일하는 불평불만하지 않는 로봇을 꿈꾸는 사람들.
(현업자로서 대답하자면 사실 로봇은 인간보다 싸지도 않고 고장도 자주나는 편이다.)(아무튼)
그렇다면 반대로 말한다면 인간은 자꾸 고장나는 로봇같은, 영원하지 않은 녹슬고 낡고 고장나는 몸을 가진 로봇이라고도 하겠다.
작가는 이미 이 책 이전에 중증 우울증에 걸린 아버지의 이야기를 썼다. 그 가운데 어머니가 파킨슨 병을 진단받고, 거기에 더불어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파킨슨과 췌장암. 세상은 어떻게 한 사람에게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연명치료도 안받을거고, 그냥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다가 죽을란다'고 하지만 '암이 진행되며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하면, 그 시점부터는 가족의 돌봄없이 생활을 이어갈 수 없으므로 혼자만의 의지와 생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의사의 말과 자식들의 결정에 순응하여 결국 항암을 진행한다.
그리고 작가는 부모의 항암을 지켜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사실 나이를 먹으며 주변에서 왕왕 암의 이야기를 듣는다. 암 이야기를 꺼내면 꼭 주변의 누군가는 '그러고보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 암 걸렸대'라든지 '우리 직장에 누구누구씨가 암이었다가 수술하고 괜찮다고 하잖아.'하는 말을 하는 요즘이다. 젊은 세대에서도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자살 다음으로 가장 높은 사망원인이 '암'인 국가. 이정도면 암이랑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하는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암 이야기를 하면 마치 1+1인것처럼 따라오는 이야기는 '항암'내지는 '수술'에 대한 이야기다. 그 결말에 누군가는 그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복했다고 말한다. 다시 삶의 궤도에 올라타는 사람, 삶의 궤도에서 튕겨져나가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
그 가운데 고통받는 가족을 지켜보기,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소변을 뜯대로 가릴수도 없고, 화장실을 갈수도 없고, 밥을 먹는것도 힘들고, 기력이 없고. 환자가 가장 고통 받는것은 굳이 말 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그 고통을 제대로 가늠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눈을 돌리고 회피하며 그런 고통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다가 그것을 점점 직면해야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항암치료를 받고, 항암치료 이후 부작용에 시달리고,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엄마와 엄마를 보살피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뜻하지 않게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떠나보낸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를 그렇게 보내면 안됐었는데, 하는 회한이 서린 눈물. 엄마가 늙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엄마가 나이 들고 수술을 받을 일이 생기면 어떻게 간병하지. 입원비는 어떡하지. 등등.
병이 있는 가족을 돌보는 것에 대한 적나라한 고민들이 책에 담겨있어 '남의 얘기'로 보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가족이 늙어간다.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간다. 그리고 아마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노후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 나이즈음 나를 돌보아줄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사회제도는 어떻게 될까. 그때도 나의 늙어감은 오롯이 개인의 문제가 될까. 병이 나를, 나의 가족을 비껴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저출생 이전에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인구과밀의 수도권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지금부터 얼마만 지나면 도미노 쓰러지듯, 파도가 밀고 들어오듯 고령화 인구가 쓸려가듯 사망해나갈것이다. 사람이 없으면 집은 무너진다. 그러면 무너지는 지역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와 나의 미래를 순차적으로 바라보며 현실적인 문제들과 감정적 파도를 거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다. 조금 더 유명해지고,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예비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과연 내게 죽을 복이 있을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죽을 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