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한겨레출판
( 출판일 : 2023-09-30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7-10
페이지수 : 256
상태 : 승인
<구의 증명>으로 유명한 최진영의 소설이다. 몇년 전 읽었던 그 작품보다야 덜하지만 역시나 무거운 작품이다. 고통이 가득한 고달픈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까. 내 삶 하나에 주어진 소명도 버거운데 대물림되는 소명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삶은 더욱 힘겹게 느껴질 것이다. <구의 증명>이 너무나 힘겨운 삶을 살았던 구와 담,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단 한 사람>은 한 가족, 그 가족의 계보, 나아가 고대 나무들의 얽힘과 소멸 속에 담긴 삶의 고통을 담아내고 있다.
장미수와 신일복의 다섯 남매 중 셋째가 사라진다. 부부와 남은 네 아이는 각자 제 탓을 하며 실종된 아이를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이 집안의 여자 한명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대물림된다. 갑작스럽게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단 한 사람'만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를 구할지 선택할 수는 없기에 혹 나쁜 사람을 구하게 되더라도 도리가 없다. 이 능력을 쓰기를 거부하면 일상이 지속되기 힘든 신체의 고통이 나타난다. 외할머니 천지, 엄마 미수, 딸 목화, 조카 루나로 이어지는 이 능력을 네 사람은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며 살아나간다.
주어진 소명에 대한 네 사람의 관점이 너무나 다르게 나타난다. 전쟁을 겪은 천지는 자식을 구한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적이라 말한다. 엄마 천지가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는 미수는 남들도 자신과 다를 뿐 또다른 고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주인공 목화는 삶에 대한 엄마의 경멸스런 태도에 자신이 상처받음을 깨닫고 제가 구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엄마 일화와 갈등하며 방문을 닫고 자살을 시도했던 루나는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네 사람이 같은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들의 처지가 기질과 공명하며 목화의 질문 '운명은 과연 어디까지인가'와 이어진다.
물론 이 질문은 읽는 나에게도 무겁게 던져진다. 작가는 네 사람에게 강제로 주어지는 소임을 통해 운명이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다만 어디까지 운명이라 말할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답을 한다면 일어난 일은 운명이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운명이 아닌 것 같다. 굉장히 모순된 말이지만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던 양자가 고정되어야 하는 거시의 세계에 나와서는 입자가 되듯이 말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고 그 일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이것이 그동안 내가 생각한 운명이다.
내가 원해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이 삶을 이끈 것은 내가 아니라 어떤 모종의 힘인 것 같고 지금 역시 나는 그 힘에 이끌려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강제하는 것에는 강한 반발과 혐오를 느낀다. 이끌려 가면서도 이끌려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것 같다. 이끌림을 인정하면 이 삶이 너무나 허무해질 것 같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운명썰에는 볼품없는 과거를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도 동반된다. 지난 것은 운명으로 치부하고 미래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 역시 모순이다.
세째인 금화가 실종되는 사건은 개인의 기질과 강하게 연결된다. 이 사건은 너무나 강력한 것임에도 남은 네 남매의 성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일화는 여전히 목적지향적이며, 월화는 여전히 타인지향적이며, 목화는 여전히 질문을 하고 목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대물림되는 관계가 종적이라면 이 남매들의 관계는 횡적이며, 이 종과 횡이 만나는 지점에 '단 한 사람'이 남는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운명에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이 아닐까싶다. 천지 등 네 사람처럼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 한 받아들여야 하는 질문과 계속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구해야 할 것일 수도 있고 구하지 않아야 할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은 소임을 다해도 고통스럽고 하지 않아도 고통스럽다. 운명이란 이런 것이다. 피하나 피하지 않으나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니 그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그뿐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구해진 '단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이 소중한 이유는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이 어디까지인지 알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정해진 길이라면 속편한 대로 맘껏 갈 일이고, 정해지지 않을 길이라면 더욱 맘껏 갈 일이다. 내 길을 걸어가는 나는 그 길을 걸어가는 '단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