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장미: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 최애리 옮김반비
( 출판일 : 2022-11-25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7-08
페이지수 : 407
상태 : 승인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손꼽는 리베카 솔닛의 책이다. 글로 세상의 무자비한 권력과 불합리에 저항하는 그녀는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에 대해 어떤 글을 썼을까, 읽기 전 기대감과 호기심에 설레였다. 목차를 보니 온갖 것을 끌어와 한 주제로 연결시키는 솔닛의 주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을 것 같았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녀의 저작은 대부분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내용이 풍부해 지겹지 않다.
<오웰의 장미>는 오웰의 에세이 중 한편에 적힌 '장미를 심었다'는 내용에 착안하여 장미에서 전체주의에 대항할 힘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장의 주제를 포착해내지 않으면 전체적인 연결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솔닛을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한번 파고 들어간 주제를 깊고도 넓게 파는 솔닛은 대부분의 저서에서 풍성한 내용과 생각할 거리를 전해주지만 결코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작가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산만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작가는 오웰이 <1984>에 묘사한 미래에 대한 내용과 장미처럼 가시가 돋힌 고슴도치를 연결해 1장 '예언자와 고슴도치'로 포문을 연다. 미래를 군화발 아래 짓밟힌 것으로 예언한 소설 <1984>는 작가 오웰의 세상에 대한 관점을 드러낸다. 때문에 오웰은 세상을 비판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썼으며 이러한 그를 가시를 세운 성난 고슴도처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오웰이 장미를 심었고 솔닛은 그 어울리지 않음에 집중하며 오웰과 장미에 대해 파고든다.
그 천착은 솔닛답게 유난스럽다. 잘 알려진 오웰에 대한 내용은 그렇다치자. 장미에 대한 식물학적인 정보부터, 장미로 유명한 사진 작가, 화가, 정원, 영국의 귀족과 제국주의, 스탈린, 현재 장미 산업의 비인간적인 현장까지 오웰과 오웰의 글을 엮어 담아낸다. 그 과정은 모더니즘의 오만이 야기한 혼란스런 현재로 이어진다. 나치와 소련이 몰락했음에도 되살아나는 전체주의 망령은 오웰의 <1984>를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솔닛은 진실을 호도할 뿐 아니라 진실에 대해 관심을 잃게 하는 현재의 상태에 우려하려 '장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장미가 표방하거나 은폐하는 숱한 이미지들 속에서 솔닛은 '욕망'을 가져온다. 그것은 개인이자 현재에 대한 충실이며 불완전함에 대한 받아들임으로 읽힌다. 솔닛의 꼬리표처럼 느껴지는 '희망'과도 연결된다. 그녀는 결코 '희망'을 말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힘든 처지에도 장미를 심는 오웰처럼 우리가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아름다운 장미에 대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영국과 오웰의 가문, 장미 산업 현장까지 아우르는 폭에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미가 대변하는 아름다움과 욕망이 이기적이고 사악해질 수는 있음에도 그 힘이 결국 세상을 지키는 힘이 된다는 결론은 솔닛이 늘 수미상관형이기에 예상은 했었다. 그럼에도 기득권 지향의 획일적인 장미와 다른 '나만의' 장미인 오웰의 장미를 대비시키고 스탈린의 레몬을 가져와 다시 오웰의 장미와 대비시키는 장치에서는 다시 한번 경탄했다. 솔닛은 구성의 신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논의는 흘러흘러 오웰로 수렴된다. 마지막 장의 마지막 소제목이 '오웰강'일 정도이다. 솔닛은 다양한 인권 운동을 하면서 페미니스트를 표방한다. 그러한 그녀가 오웰의 여성 문제는 어떻게 다룰지 언제쯤 그 문제를 언급할지 궁금했다. 솔닛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남자였던 오웰의 맹점을 인정하나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흐름 안에 포함시키며 이 부분에 대한 오웰에 대한 비판을 그와 그의 저작들을 폄하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으로 읽는다. 그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으며 이러한 불완전함이 오히려 인간적인 것이라는 옹호 비슷한 내용도 포함된다.
결국 <오웰의 장미>는 오웰에 대한 문제적 평가로 오웰을 폄하하지 않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향한다. 솔닛은 명확히 이러한 의도를 밝히지 않지만 다 읽고나면 저작의 목적이 장미 문신처럼 명확하게 보인다. 그녀는 '리좀'이란 용어를 이용해 자신이 '비계보적'임을, '전일성'이란 용어를 이용하며 오웰의 글에 담긴 일관성을 밝히며 그가 가식이나 위선을 떨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웰의 문제는 장미가 가진 다양성만큼이나 오웰의 일부분이며 인간적 약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향기없는 공장의 장미가 아니라 아내의 무덤 위에 심겨진 '볼품없는' 장미일 뿐이다. 그러나 그 장미가 가진 개성과 욕망이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걸작 <1984>에 대한 가치 훼손이 걱정되어 이러한 것일까. 솔닛의 저작물 대부분은 사회의 부조리한 관념과 사회의 불합리를 조장하고 이득을 얻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안에는 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깔고 있다. 사랑하기에 싸우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약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이 부분은 조금더 생각해봐야겠다. 솔닛은 그녀답지 않게 오웰의 문제에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장미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이 오웰의 문제에 대한 '희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간 그녀의 저작이 보이는 '수렴'의 방식은 이러한 희석은 아니었다. 솔닛의 보이는 뜻밖의 태도는 오웰에 대한, 오웰의 방식에 대한 그녀의 사랑으로 읽힌다. 그녀 역시 오웰처럼 세상의 문제에 대항하는 글을 쓰고 할동하는 사람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솔닛은 '볼품없는'이라는 표현으로 오웰의 약점을 일반화하려 한다. 같은 잘못이라도 그 사람의 압작이나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니 오웰의 잘못을 별것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의식적인 전략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를 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더욱 고심이 된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긍정적 마음은 오웰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보류시키게 된다. 솔닛의 의도대로 희석되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오웰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