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안인희 옮김현대지성
( 출판일 : 2024-02-08 )
작성자 :
윤○석
작성일 : 2024-06-02
페이지수 : 702
상태 : 승인
읽기는 읽었다. 정말 읽었다. 읽었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읽긴 읽었는데 사실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읽는 것도 어려웠어야 하는데 희한하게 읽혔다.
읽기 어려울 거 같은 고전 명작이었지만 과감하게 도전한 이유는 운문 형식의 희곡이었기 때문이다. 무식한 표현이지만 연극 대본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그렇다면 여하튼 다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니 산문 형식으로 꽉꽉 채워진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읽기가 조금은 수월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빌렸고 읽었다.
빌려 오자마자 읽은 건 아니다. 며칠 묵혀 두다가 자! 이제 한 번 읽어 볼까 하면서 책을 뽑아 들었다. 몇 페이지 읽다가 힘들면 그냥 자야지 했는데 순식간에 100 페이지를 넘게 읽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신기했다. 아니 이상했다. 뭔 내용인지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거 왜 읽히지? 주인공 파우스트와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메피스토 간의 이야기이다.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존재라고 해야 되는 건지, 가치와 무가치라고 해야 되는 건지, 절제와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질서와 혼돈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모를 관계다.
둘 이기도 하고 하나 이기도 하고 또 둘 이기도 하다. 계약 관계에 의해 동료처럼 친구처럼 주종처럼 파우스트가 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한다. 그 처음이 시대 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게 분명한 그레트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여자와의 관계였다. 많이 배우고 어쩌고를 떠나 남자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본능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온갖 신화, 전설, 민담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가 다 나온다. 우리 나라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민담도 잘 모르는데 서양의 그것을 내가 알리 만무하다. 더불어 성경의 내용 역시 아는 게 없으니 뭐라 뭐라 대사 하듯이 주인공(들)과 주변인들이 떠드는데 도무지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대충 정말 대충 느낌만 느끼면서 겨우 겨우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작가 괴테의 그야말로 일생의 역작이라고 하는데 60여 년이란 시간 동안 고치고 고치기를 반복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글을 쓰고 있는데 한글 문서 기준 한 두 페이지 정도를 쓰고 대충 한 두어 번 다시 읽어 보는 게 퇴고의 전부인 나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평생에 걸친 퇴고라니... 그러니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정말 어~ 어~ 하면서 다 읽었다. 마지막에 보니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는 해설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읽어도 내용이 뿌연 건 변함이 없었다. 물론 그 해설 부분을 읽기 전에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면 읽고 난 뒤엔 조금은 빛이 새어 들어 오는 어쩌면 얼마 후에 안개가 걷힐 수도 있겠다 하는 기대가 드는 정도였다.
문득 앞에도 언급했지만 파우스트라는 명작을 어쩌다 보니 운문으로 처음 접하게 됐는데 과연 내가 산문으로 된 것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아니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상 똑똑한 주인공인 파우스트가(마법까지 배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인간 본연인지 무엇인지 모를 그 무언가를 찾는 건지 버리는 건지 그냥 확인하는 건지 알송달송한 이 이야기를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어려운 내용의 책을 그것도 명작을 여하튼 잘 읽은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바라는 게 많은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이미 악마가 추구하는 세상에 속하는 존재로서 따로 계약을 맺고 시련을 겪을 일은 없겠다 하는 안도의 포기인지 한 숨을 내쉬며 내용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