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백경: 100개의 건축 공간으로 복원한 경성의 시간
김은주 지음동녘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이○묵
작성일 : 2026-07-03
페이지수 : 592
상태 : 승인
생각해 보면 대전에 관해서도, 청주에 관해서도 이런 도서가 있었다. 식민지 근대 건축들에 대한 이력이나 건물의 모양새 등이 담긴 책들.
나쁜 기억은 다 치워버려서 잊는 것이 상책이긴 하지만, 때때로 그때를 추억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완전한 망각에 이르러 버렸다면 그것은 또 난감할 수가 있겠다. 이를테면 임정의 독립운동 내용을 경성을 무대로 찍어야 할 때, 그때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고증하지 못한다면? 실제적인 독립투사들의 노력이 판타지같은 배경에 담기게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성이 있다고 저자가 밝히지는 않았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저자의 이런 학문적인 보존 자체는 나쁜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총독부나 노기신사같이 기분나쁘고 민족정기를 해치는 건물들은 다 폐허로 만들어서 목천이나 여기저기 치워버렸고, 더 망가지기 전에 조사를 한 셈이니까.
대학로 주변에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서울대 의대 자리가 경성제국대학이라고는 알고 있었다만 이공학부도 당연히 거기 어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고향 동생이 졸업한 서울과학기술대학 자리에 몇 개 건물이 군수 산업의 역군을 키워내기 위해 만든 경성제대 이공학부라고 한다. 놀랄 노자다.
장충단 공원쪽은 의외로 다 헐어놔서 그런지 다루지 않았던 것 같고, 노기 신사 같은 것들은 나와 있었다. 서울타워 있는 자리가 조선 신궁의 맨 정상 부분이라니.. 동국대와 명동 주변, 종로 주변에 일제 시대에 지어놓은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뭣 모르고 이미 몇 번 지나다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 책의 의미가 다시 다가오기도 하였다.
조계사자리 대해서도 그렇다. 정읍 보천교에서 건물 떼다가 만든 것은 대웅전 앞 유적 설명 현판에서 보긴 한 것 같은데, 그게 태고사가 되었다가 불교 정화운동 때 몰아내고 나서야 조계사가 되었다는 점, 영암 도갑사에서 본존불을 옮겨다 안치시킨 점 등은 몰랐었다.
목차를 쓰는 기준이 되었던 제국주의 시절 도시철도들도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야인시대 드라마에나 나오던 모노레일 한 두개가 다인 줄만 알았는데... 여러모로 배우는 게 많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