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문지혁 장편소설
문지혁 지음민음사
( 출판일 : 2020-11-27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6-30
페이지수 : 190
상태 : 승인
시립도서관에서 '오토 픽션' 수업을 듣는다. 저자인 강사님이 좋은 예로 추천한 몇 권의 책 중 하나이다. 오토 픽션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쓴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장르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책 <초급 한국어>는 그냥 소설로 읽힐 잘 쓴 작품이다. 강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면 자전적인 소설로 읽힐 것이다. 오토 픽션은 자전적인 소설과 구분되는 명백히 다른 부분이 있지만 공통적인 부분도 있어 앞으로 장르 설정에 좀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소설은 오토 픽션이 어떤 것인지 잘 알려 준다거나 하는 등의 장르 설정에 대한 참고를 떠나서 감동적인 작품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중 엄마가 뇌졸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외롭고 지치는 타국 생활 중 소설가를 꿈꾸던 자신의 과거와 헤어진 연인과 함께 씁쓸하게 상기하곤 한다. 별 낙도 없이 대체로 의기소침한 그는 성실하게 제 일을 해나간다. 그러나 채용 연장이 안되어 귀국하는 날 공항 대기실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는 한번도 슬프다고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장면과 에피소드로 모든 정서를 전한다. 엄마와의 대화, 동생과의 통화, 학생들과의 수업 등 짧게짧게 전해지는 모든 장면이 그의 성격과 마음을 전해준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 상태가 다 느껴진다. 지금 얼마나 화가 나는지,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마나 황당한지 등등이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바로 이런 것이다. 감정을 절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서가 메마른 것도 아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았던 정서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 울컥하고 후회하는 그런 마음도 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슬프고 아프다. 사는 게 다 그렇게 때문이 아니라 그런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간에 "언어의 한계가 자신의 한계"라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소설가로서 특별한 업적이나 이름을 남기지 못해 괴로워 한다. 강사로서의 신분은 생활을 해결해주지만 정체성에 위로를 주지는 못한다. 과거의 여러 장면들에서 자신의 문제를 찾으며 그는 힘들어한다. 그러나 철학자의 말은 이야기가 끝나면서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언어의 한계는 발화자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화되지 않은 어떤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엄마와 툴툴거리는 어색한 대화들이 그와 엄마의 관계를 모두다 말하주지는 않는다. 그는 한번도 엄마를 사랑한다 말하지 않지만 그 관계에는 깊은 사랑이 존재한다. 그것처럼 지금의 모습이 곧 그의 한계는 아닌 것이다. 그 역시 말해지지 않은 무언인 것이다. 언젠가 무언가로 발화되거나 표현될 무엇처럼 그 역시도 그런 가능성의 존재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깊은 슬픔과 통찰이 담겨 있다. 말하지 않음으로 전하는 것, 슬픔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강사님이 왜 이 소설을 추천했는지 짐작이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러한 방식으로 쓸 수 있다면 자신과 삶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통찰은 곧 독자에게 감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신감이 막 일어나지는 않지만 미리부터 "나는" 안될 것이란 단정과 한계는 짓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