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충격 : 지중해, 내 푸른 영혼 : 김화영 산문집
김화영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2012-01-01 )
작성자 :
심○희
작성일 : 2026-06-30
페이지수 : 229
상태 : 승인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이면 프로방스라는 사시사철 환한 햇살이 내리쬐는 온화한 날씨의 축복 받은 그 땅을,어쩌면 나는 평생 못 가볼 그곳을 동경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 나는 지중해보다 더 빛나는 ' 청춘'의 순간을 같이한 기쁨과 더불어 다시 오지 않을 청춘에 대한 묘한 슬픔까지도 느끼고 있다.
'이거야말로 꽃보다 청춘이잖아! 이 낭만 어쩔거야!'
책을 읽으며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엑상프로방스는 나에겐 폴 세잔이 나고 자라 그의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곳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구글 지도에서 엑스프로방스를 찾아봤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그나마 익숙한 마르세유가 근처에 있었다.
1968년,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이제 막 벗어나 가난에 허덕이고 유신 독재에 시달리던 그 시절에 작가는 처음으로 엑스프로방스의 눈부신 지중해에 발을 디뎠다.
< 수년 후에는 내 청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늙지 않고 잠겨 있는 곳이 될 이 소도시에 나는 이처럼 수줍고 말없이 도착하였다 p29>
지중해에 대한 작가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몇몇 문장만 봐도 알 수 있다.
<행복의 외침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이 열린 풍경,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한 사람, 가득하게, 에누리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 프로방스는 그리하여 내게는 그토록 낯이 설었다. p.49>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진 햇빛의 물결이 우리들 주위의 들판에서 거세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p59>
<지중해에는 영원한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p62>
나는 컴퓨터에 구글 지도를 펼쳐 놓고 작가가 간 곳을 집요하게 찾아 헤맸다. 같이 까뮈의 무덤을 갔고, 아를에서 조금 떨어진 고흐가 입원해 있던 정신병원(수도원)을 찾아 그 풍경을 보았다. 나는 아를을 말로만 들었지 지도에서 직접 위치를 찾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도찾기가 조금 힘들었던 게 작가는 우리말로 순화해 '풍비에이유'라고 썼지만 구글 지도에는 '똥비에이으' 라고 최대한 발음을 비슷하게 써놓아 검색으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끈질기게 주변 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레보드프로방스'를 도저히 못 찾겠다가 '레보-드-쁘호벙스' 를 찾았을 때는 뛸뜻이 기뻤다. 책 읽은 시간과 지도 보는 시간이 거의 같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바위산의 옛 로마 유적을, 알폰소 도데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던 그 풍차를 같이 보며 작가가 그 작은 창을 통해 보았을 풍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주말에 마르세유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은 어떠한가! 나는 경로찾기를 통해 그가 도착했을 생샤를 역을 찾아 거기서부터 마르세유 여행을 시작했다.
ㄷ자로 생긴 구항은 찾기 쉬었다. 작가가 간 5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곳은 정박해 있는 하얀 요트들과 눈부신 햇살 아래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다른 곳은 구글 리뷰들 보다 보면 비 오는날 사진과 함께 리뷰를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상하게 그 곳의 사진들은 한결같이 눈이 부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작가의 이런 문장을 만난다.
<나는 구항에 비치는 지중해 특유의 저 신선한 햇빛의 감도와 그 햇빛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미소를 다 전하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워한다 p130~131>
마르세유 구항에 있는 메리보트 선착장으로 가서 이프성으로 가는 유람선을 탈 때는 나도 같이 유람선을 타고 이프성으로 갔다. 구글 지도속에 몬테크리스토백작의 배경이 되었다는 이프성의 사진들이 친절하게 나와 있다. 작가도 저 눈부신 윤슬들을 보았겠지?
부활절을 맞아 이탈리아 여행을 가는 에피소드에서 그 빛나는 청춘의 한 모습은 절정에 달한다.
나는 르네상스 역사를 좋아해서 관련 책들을 나름 많이 읽었는데 한번도 구글 지도로 이렇게 샅샅이 훑은 적은 없었다.
이미 선진국에 들어선 지금도 우리나라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차를 타고 몇시간만 달리면 다른 나라 국경 몇개를 지날 수 있는 그 경험을 작가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처음으로 하며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처음 도착한 로마에서, 피렌체, 피사 그리고 베네치아까지... 이번에도 집요하게 구글 지도로 하나하나 찾으며 작가가 보았을 그 풍경들을 간접 경험한다. 작가의 로마 숙소였던 유스호스텔은 로마올림픽 당시 선수촌으로 쓰였던 건물이었다는 것에 착안해 검색을 해서 찾아냈다. 그곳에서 작가 스스로 치욕스러웠다고 말한 경험을 하는데 아직 우리 나라가 세계 유스호스텔 협회에 가입을 하지 않아 남들은 다 들어가는데 호텔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 겨우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는 거다. 책에서 잠깐씩 언급되는 그 당시 한국의 위상이라는게 너무 보잘 것 없어 가슴 아팠다.
나는 거의 처음으로 베네치아를 아주 자세하게 살폈다. 물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섬으로 이어져 있는지는 몰랐다. 그리고 특이한게 베네치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두칼레 궁전, 산마르코 대성당, 산마르코 광장이 모두 육지가 아니라 아드리아 해를 접한 곳에 있다는 거였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런 문장을 덧붙인다.
<그 공화국이, 항해하여 들어오는 사람들의 우러러 보는 시선을 마중하며 보여주는 환상적인 건물들의 눈부신 구조를- ....... 그는 육로를 통해 베네치아 정거장에 도착한다는 것은, 궁전에 들어가는 데 마치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누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기적적인 이 도시에 들어가는 데는 지금 자기와 같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p191>
베네치아에서 방이 없어 기차역에서 노숙하는 장면, 쫓아내는 경찰들에게 한국말로 말을 하며 짐짓 못 알아먹는척 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들, 그리하여 새벽의 안개낀 베네치아를 볼 수 있었던 경험, 휴대폰이 없던 시절, 편지로 약속을 잡기로 했으나, 분실된 편지로 인해 엇갈려 친구와 만나지 못하는 장면마저도 청춘의 낭만이 철철 넘쳤다.
엇갈렸던 친구와 이듬해 같이 한 지중해의 발레아루스 제도에 속한 '이비자섬'으로의 여행까지 구글지도와 함께 했다. 작가의 마지막 여행은 즐거운 가운데서도 왠지 쓸쓸함도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 아마도 내 청춘 마지막의 지중해 여행이 될 것만 같은 슬픔 p226>
이라는 구절로 작가도 그 묘한 슬픔을 전했다.
그야말로 눈부신 청춘의 절정의 순간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은 그 많은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엑상프로방스로 향한 것도 무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