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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시집

진은영 지음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22-08-31 )
작성자 : 심○희 작성일 : 2026-06-29
페이지수 : 140 상태 : 승인
나는 어릴 때 시인들을 동경했다.
초등학교(국민학교)시절 글짓기반이었던 나는 대회를 나갈 때면 늘 산문 부분을 나갔다.
짧은 문장 안에 함축된 그 많은 의미를 담아 내는 일이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시인들을 동경했다.
그러나 그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시인의 말을 이해하는 건 늘 어려웠다. 한때는 유명시들을 필사적으로 외우곤 했는데 그마저도 나이가 들면서 시집을 읽는 게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아마 이 시집도 도서관에 같이 간 딸이 빌리지 않았다면 내가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우연처럼 운명처럼 진은영의 시집을 읽었다.

딸 말에 의하면 제일 유명하다는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로 시작하는 시 '청혼' 도 물론 좋았지만 내가 정말 좋았던 시는 '사랑합니다' 라는 시였다.

< 내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너는 말했다
남색과 노랑의 대비처럼

중략

밤이 에나멜 구두처럼 반짝거렸다
맨발로 어디든 ---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연을 읽는 순간, 사랑을 고백 받은 그 밤, 깜깜한 밤이 순간 잘 닦은 에나멜 구두처럼 반짝거리고 맨발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가슴 벅차고 설레는 그 순간의 광경이 눈앞에 쫙 펼쳐지는 것만 같아 나도 같이 벅찼다.
< 맨발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로 끝났다면 나의 그 느낌은 반도 안 되었을 것이다.
'맨발로 어디든' 다음에 잠깐의 뜸을 들이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로 이어져서 고백받는 순간 설레임에 가슴이 벅차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그 다음 말을 내뱉는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 외 가슴을 울린 시는 '그날 이후'라는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17살 예은양의 생일날 예은양의 목소리로 쓰여진 시였다.
'애 목소리로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말 한마디라도 들으면 그나마 숨이 쉬어질거 같다'는 한 유가족의 말에 시인들이 동참해서 한 명씩 희생자들이 시의 화자가 되는 구조로 시를 써 생일날 낭독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시집을 읽은 곳은 저녁 식사를 다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 느긋하게 참외를 후식으로 먹는 식탁에서였다.
가장 여유롭고 가장 평화롭던 시간이었는데 '그날 이후' 시를 말 그대로 질질 짜며 읽었다. 가족들이 모두 방에 들어가 그 모습을 못 본 게 다행이었다.

<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뜻하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만 입게 해서 미안>
-그날 이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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