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 욕망과 결핍, 상처와 치유에 관한 불륜의 심리학
에스터 페렐 지음 ; 김하현 옮김웅진지식하우스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6-21
페이지수 : 444
상태 : 승인
불륜에 관한 책이라니, 도서관 반납대에서 보고는 바로 집어들었다. 구미가 제대로 당긴다. 표지부터 빨갛다. 새빨간 바탕 가운데 참대처럼 그려진 성냥갑 안에 파란 머리 성냥 두 개가 나란이 누워 있다. 빨간 가장자리에서 성냥갑에 기대고 있는 성냥 한 개의 존재라니... 표지 디자이너가 누군지 궁금할 정도로 손에 꼽을만큼 내용 반영이 잘된 인상적인 표지이다. 책 가운데 접히는 부분도 빨갛다. 마치 피가 스며든 듯 은은한 빨강이 접히는 자리마다 빛을 발한다. 모양새부터 도발적인 책이다.
심리상담가인 저자가 전하는 외도에 관한 여러 사례들을 접하며 그저 흥미 위주의 글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외도에 대한 '신박한' 분석을 접하면서 혼란스럽다. 외도가 당사자한테 사랑일지라도 배우자에게 '영혼의 살인'이라고 불릴 만큼 큰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옹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흔들린다. 아니 거의 깨졌다. 저자는 외도를 옹호하려 쓴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글은 그렇게 읽힐 소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알 수가 있다. 옹호로 읽힐 소지가 있는 것은 비난을 하지 않고 분석을 하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들은 비난하지 않은 것을 편드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외도를 무조건 비난만 하는 사람들은 옹호로 읽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외도를 도덕과 윤리를 떠나 심리학적으로 다룬다. 해방이나 자유와 같은 단순한 부분부터 과거와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부분, 무의식과 충동처럼 알 수 없는 부분까지 모두 살피려 한다. 어찌나 관점이 넓으면서도 날카로운지 넓이가 아주 큰 그물이 너무 촘촘해 거의 모든 것을 잡아내는 느낌이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보고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 이 책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평가가 왜 '대단히 지적인 탄원서'인지 절로 수긍이 된다. 불륜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지적' 수준을 요구한다. 많이 아는 지식뿐 아니라 분석과 통찰의 부분에서 말이다.
저자의 논의 중 인상적인 부분을 몇 가지 꼽고싶다. 먼저 외도의 원인을 상담가답게 부부와 외도 상대의 내면 문제에 접근해 짚어내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원인에 가깝게 접근한다 해도 대부분의 문제가 풀리지 않음을 밝힌다는 것이다. 사랑과 성은 도덕으로 제한할 수 없어 안된다고 안다고 해서 멈추지 못한다. 또한 심리적인 문제를 인식해도 그 소망과 충동을 제어해내기가 쉽지 않다. 내외부의 원인을 찾아도 불륜의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 그럼에도 원인에 접근하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좀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외도의 성격을 문제가 아니라 '모순'으로 규정한다.
"성과 가정생활 간의 갈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순이다."(p.273)
불륜을 바라보는 이 시각은 도덕적인 접근보다 훨씬 더 관계의 성장의 측면에 이바지하지 않을까 한다. 외도에 대한 합리화나 정당화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지만 불륜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공감이 된다. 상처를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어떤 것도 해결되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모순으로 접근한다면 내면의 충돌이 조금씩 감해지는 것에서 관계도 삶도 좀더 나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접근 방식이 외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모순이라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약점이니 관대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갖다 쓰지를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르게 접근한다는 것일 뿐 논지는 결코 옹호가 아니다.
저자는 결론에서 여러 모습의 불륜 결말을 나열한다. 그 중 인상적은 것이 '다자연애'와 '비독점적인 관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성과 사랑, 결혼 제도에 대한 한계와 모순을 받아들여 합의를 통해 복수의 상대를 두자는 것이다. 반론으로 결혼을 하지 말고 그냥 연인 관계를 유지하라는 비아냥과 비독점적인 척하는 '독점적 관계'라는 것이 제시되기는 한다. 지금은 이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지만 점점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이 존속될 필요성은 받아들이되 구속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식이 서서히 도입될 것이라 본다. 도덕이 엄격하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지금의 방식에서 점점 인간의 자유를 덜 구속하는 방식으로 진화해나갈 것이다. 사회 제도 전반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올 것이고 결혼 제도 역시 그것을 피하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는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 관계는 유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유지 외에도 덜 상처받고 헤어지더라도 잘 헤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랑하고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서로 다른 자신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편지로 전하며 이별하는 부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불륜을 도덕적으로 비난만 하는 지금의 세태는 상처 입은 배우자의 마음이 위로를 받고 다시 잘 살아가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헤어짐을 택한다면 분노와 상처뿐인 이별보다는 잘 헤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올해의 책 1번에 올린다.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