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 : 정세랑 소설
정세랑 지음 ; 최영훈 그림창비
( 출판일 : 2019-06-21 )
작성자 :
김○진
작성일 : 2026-06-18
페이지수 : 84
상태 : 승인
괴담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괴담이고 기담이고, 한국 괴담이고 일본 괴담이고 중국괴담이고 아무튼 나와 결이 잘 맞지 않는다. 요즘은 괴담류가 생각보다 인기를 얻어 유명 웹소설도 나오고,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잡았다는데 나는 도무지 그것을 즐길수가 없다. 뭔가 내 몸안의 수용체가 잘못된 것처럼 괴담이나 기담에서 얻는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영화 '백룸'도 인터넷 괴담이 발전하여 나온 영화라는데 이쯤 되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뭔가 잘못된 인간인가?? 다들 이게 어째서 재밌는거지?? 으스스함에서 '그래서 도대체 뭐 어쩌라고'정도의 감상밖에 받지 못하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작가가 쓴 이 얇디얇은 책이 '기담'이라는 것에 어느정도 실망을 하고서 첫 장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뭔 기담을 쓰신다고......
여러분 화타를 아시나요. 기가막힌 의사라면서요. 정세랑 작가님도 화타이신것 같아요.
짧은 이야기라서 그냥 금방 끝낼생각으로 읽었는데 푹 빠져들고야 말았다. 책을 읽고 실제로 찾아봤다. 정말 홍대에 그렇게 유명한 랜드마크급의 주유소가 있었어? 그리고 그 주유소가 모 정유회사의 첫 주유소였다고? 에이...너무 설정같잖아. 그런데 진짜 있더라. 진짜로 기골이 장대한 주유소가. 그리고 거기에 서있는 주인공을 생각한다. 주유 기계가 한대 더 있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의 장사같은 남자애. 그리고 그 남자애가 얽혀드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
도깨비랑 씨름이요? 나같은 애라면 '쟤랑 진짜 싸워요? 화 많이 난거 같은데?'라며 어이가 없겠지만 전직 씨름선수는 의심을 하는 와중에도 성실하다. 성실하게 이길 준비를 하고, 성실하게 기다린다. 샅바까지 세탁해서 가져간걸 보면 말 다한거 아닌가. 중간중간 경찰이 찾아오는 장면이라든지, 글의 중간중간 있는 삽화들도 재미있었고 마지막에 화를 내는 지점이 입고 있던 파카의 로고 부분이 고둥에 찔리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원래 사람은 사소한 부분에서 터져버리곤 하니까.
다 읽고난 기분은 그 비오는 날 밤 긴장감이 팽팽했던 씨름을 끝내고 해가 밝아오는 공터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느낌. 개운하면서, 두근두근한 고양감.
다들 이런 재미에 괴담을 읽으시나요? 그렇다면 저도 괴담,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 열편만 더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