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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2011-11-10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6-17
페이지수 : 193 상태 : 승인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소설을 덮으며 그려진 이미지이다. 왜 이런 이미지가 그려진 것일까. 이 글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될 터이다.
점점 눈이 멀어 실명에 가까워진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만난다. 남자는 유전병으로 인한 것이고 여자는 이혼을 하고 7살 아이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기며 그렇게 된다. 독일로 이민을 갔다 돌아온 남자는 가족들의 걱정 속에서 '희랍어' 강사를 하다 학생으로 여자를 만나게 된다. 문학을 강의하던 여자는 두번째로 찾아온 '그것'(실어증)을 치료하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첫번째 실어증을 프랑스 단어 '비블리오떼끄'를 발음하며 고쳤던 경험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상처 받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각이 없다. 소설 속에는 희랍어가 수동태와 능동태 말고 '중간태'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분노하지도 아파하지도 않는, 마치 중간에 있는 무감각한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이들이 '감각'을 찾아아가는 이야기로 보인다.
남자는 독일에서 연인으로부터 나무덩이로 맞고 3일간 혼수 상태에 빠진다. 이유는 말을 하지 못했던 연인에게 자신이 눈 멀 때를 대비해 소리를 내는 것을 배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당하고 한국행을 택한다. 남자는 연인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연인이 실명을 대비해 뭔가를 연습하라고 했던 주문을 떠올린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는 연인이 자신에게 얼마나 상처였는지 곱씹는다.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 남은 말을 하지 못하는 연인에게 자신의 상황은 불평을 할 수조차 없는 작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한 마디에 터진 연인의 격한 분노처럼 그도 터졌어야 했다.
여자는 아이를 되찾고 싶지만 다시 소송을 할 돈도 기력도 없다. 아이와의 시간을 떠올리고 일상을 영위하지만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지낸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에 아이도 사랑할 수 있어야 했다. 엄마의 상을 치루고 그녀는 무표정하다. 아이가 할머니는 웃는 것을 바랬을 거라고 말하자 그녀는 웃는다. 자신의 웃음조차도 누구간의 바람에 맞출 만큼 그녀는 능동적이지 않다. 슬퍼하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녀이다.
두 사람은 학원 지하실에 들어온 새 한마리로 인해 함께 지내게 된다. 나갈 곳을 찾지 못한 작은 새는 두 사람의 모습 그대로이다. 길을 찾아주려 해도 도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새의 모습은 늘 혼자인 늘 '골똘한' 두 사람의 모습이다. 이 작고 약한, 겁 먹은 새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작가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이 서로를 느끼도록 한다. 서로를 위해 계단을 살피던 두 사람의 모습 자체가 답이지 않을까싶다.
희랍어는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죽은 언어이다. 이 언어를 두 사람이 살려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언어를 통해 살아난다. 사고로 안경이 깨진 상황에서 남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자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말을 하지 못하자 남자의 손바닥에 글을 쓰며 대답한다. 두 사람의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던 두 사람은 제 안에 있는 뜨거움을 의식해야만 한다.
우리도 이처럼 감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먼 고대의 언어가 우리를 깨우도록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한강의 소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상처 받은 연약한 영혼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어쩌면 그녀가 이처럼 작은 새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소설을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으로 느낀 것은 이 작품이 그저 '관조'가 아니라 형상화를 통한 '위로'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해를 통해 위로를 받기에 한강의 소설은 난해하다. 그래도 어렴풋하게 직관적으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질 것이라고 본다. 이 작품이 누군가의 눈에 안경이 되고 누군가의 말문을 틔우는 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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