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
( 출판일 : 1970-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6-15
페이지수 : 328
상태 : 승인
<1984>는 개인적으로 수작 중의 수작으로 꼽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 조지 오웰은 조금만 좋아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폭행 미수와 여성 편력 등 여성에게 보인 그의 태도는 그를 좋아할 수 없게 한다. 전체주의 사회를 통찰하며 비판하는 작품을 쓴 작가가 어떻게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작품이 작가와 일치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큰 괴리감을 안기면 작품에 주는 애정을 작가에게 쏟기가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 괴리감이 한 책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아, 조지 오웰은 참말로 이해하기 힘든 작가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로 지금의 '탐사 보도'쯤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워낙 유명한 책에 유명한 작가이기에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국가로부터 수급을 받는 하층민의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마치 그림처럼 그려지는 묘사 사이로 낭중지추처럼 날카롭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오웰의 현실 비평은 작두를 탄 무당처럼 신들린 문장들이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영국의 석탄 산업과 파업, 마가렛 대처가 절로 떠오른다. 오웰이 그리는 풍경이 영화의 배경보다 50여년 전 이전이고, 지금이 그때보다 100여년 이후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여전하다. 글의 무게를 느끼며 '위건'이 어떤 곳인지 찾아보며 나름 충실하게 독서를 한다. 이런 작가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따라오다가 2부에서 사라진다.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로 서늘했던 1부를 지나 2부로 넘어가자 '이게 뭐지'라는 어리둥절함이 엄습한다. 2부를 채 몇 장 읽기도 전에 책을 놓고 싶어진다. 말하는 모양새는 분명 한 작가가 분명한데, 1부는 '대가'가 2부는 '초보'가 쓴 것 같다. 겨우겨우 이 확신에 찬 논리없는 주장을 다 읽고 나니 맥이 빠진다. 2부에서 진이 빠지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파악하고 1부에서 느낀 감동을 정리하려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그저 왜 이리 1부와 2부의 '질'이 이토록 다른 것인지에만 집중된다. 도대체 이 괴리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자 역시 후기에서 이 차이를 지적한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해석은 하지 못한다. 그저 2부를 '에세이'로 오웰이 당시 사회 현상에 대해 쓴소리를 하며 '악역'을 자처한 것으로 퉁치려 한다. 그러면서 출간 당시에도 2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을 전한다. 당시에도 그렇게 읽혔다는 것에 내심 안도한다. 이 비논리가 먹혔다면 화가 났을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같은 책에서 들리는 이토록 다른 목소리라니. 너무나 객관적인 누군가와 너무나 주관적인 누군가가 동시에 한 책에 존재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봐도 좋을 이야기들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글들에 가려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오웰은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1부는 무조건 추천이고 2부는 더 추천한다. (이 혼란스러움을 나만 맛볼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