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천양희 시집
천양희 지음창비
( 출판일 : 2011-01-14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6-06
페이지수 : 127
상태 : 승인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나도 그렇다고' 중얼거린다. 사실 '가끔' 보다 '자주' 혹은 '늘'이라고 주석처럼 생각이 또 따라붙는다. 나는 늘 기가 막힌 듯 멈춰 선다. 관념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들이 매순간 이어진다. 역시나 나처럼 생각이 많은 시인이다. 어떤 일이나 사물을 보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면에 있는 다른 의미를 생각하기 바쁘다.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고 말하려 한다. 하나라도 놓치는 것이 있을까 싶어 말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려 한다.
시인은 고독을 받아들인다. 사랑한다기보다는 어찌할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관조나 체념에 가깝다. 세상을 저렇게 예민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고독하지 않을 리가 없다. 누구와 나누기 쉽지 않은 감정이자 인식들일 것이다. 시를 쓰니 다행이지, 라는 말로 고독을 받아들이지만 남아 있는 외로움을 가만가만히 주무르는 시인을 나를 보듯 다독인다.
시들이 너무나 편안한다. 이 시들이 이토록 편한 것은 현실이나 구체적인 일상이 없이 관념과 생각들을 적어내려 갔기 때문이고 그것이 나의 성정과 너무나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시가 낮고 조용하지만 머리 속 생각들은 용암처럼 들끊고 있다. 시 중에 '적막을 쏜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시가 관념의 세계에 적막을 쏘는 존재겠지만 나는 시인이 좀 그러했으면 좋겠다. 관념의 세계를 흩뜨려놓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에 세계에서도 적막을 깨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뜨거운 용암을 언어가 아니라 행동으로도 내놓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니 자라는 바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감정이입이 희한한 방식으로 되고 있다.
시인의 시에 현실이 없다. 그녀의 시가 주는 깊고 담백한 맛은 현실의 잡다한 소란스러움이 없어서이다. 그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에 눈을 돌리지 않는 시로 읽힌다. 세상을 외면한다는 것이 아니다. 시에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바람이 거의 읽히지 않는다. 시인이 가끔은 세상의 적막을 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훌륭한 사람이나 뭔가를 이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무욕도 욕심내본 후에 이룰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시인은 후기를 시로 대신한다. 후기 시에 "나도 어둠을 벗고 햇살 속으로 망명하고 싶다"란 구절이 있다. 시인의 이름은 천양희, 이미 '햇살'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이 이미 누구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