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다산책방
( 출판일 : 2023-11-27 )
작성자 :
박○연
작성일 : 2026-06-06
페이지수 : 131
상태 : 승인
이 책은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석탄 배달 노동자로 살아가는 한 남자, 빌 펄롱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다섯 명의 딸을 둔 아버지이자,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차를 마시고, 트럭에 시동을 걸고, 석탄을 배달하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펄롱은 문득문득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펄롱은 부유한 집안의 미시스 윌슨 밑에서 일하던 가정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윌슨 부인은 그와 그의 어머니를 함부로 내치지 않았고 펄롱을 손자처럼 챙겨주었다. 그는 굶주리거나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늘 의식하며 자라야 했다.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고, 그 결핍은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비록 5명의 아이의 아버지로 남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어도,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이게 자신의 어린 모습을 투영하며 괴로워한다.
나는 이 책을 영화화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먼저 본 뒤 궁금해져 원작을 읽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킬리언 머피가 펄롱을 연기했는데, 그의 공허한 눈빛이 마치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지만, 매일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기계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펄롱은 지나가는 아이에게 거리낌 없이 돈을 건넬 만큼 타인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석탄 창고에 갇힌 한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는 최근 출산했지만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사실 그 세탁소는 부모에게 버려진 딸들, 고아, 피해 여성들이 수용되던 공간이었다. 펄롱이 석탄값을 청구하러 수녀원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한 소녀가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펄롱의 시각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한다. 기계처럼 눈치보며 일하는 여성들과 그 위에서 군림하는 수녀들. 그리고 이 모든것을 방관하는 마을 사람들.
마을 사람들은 수녀원이 마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기에 세탁소에서 일어나는 학대와 감금을 묵살하고, 펄롱에게도 침묵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펄롱은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자신과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보호받았기에, 자신도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또다시 수녀원 석탄 창고에 같혀있던 소녀를 발견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소설은 끝난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비추어 타인을 바라보곤 한다. 펄롱의 삶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로 둘러쌓여 있었지만 그 사소한 것들을 좀더 깊게 살피고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외면하는 것도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반대로 한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최근 본 드라마 <멋진 신세계> 속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대사가 떠올랐다. 펄롱 또한 삶의 의미를 서로 돕는 것에서 찾았고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다. 물론 누군가는 펄롱에 대해 진부하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하겠으나, 나는 우리 삶 속에 펄롱 같은 사람이 있어 누군가가 세상에 맞서 살아갈 의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